반바지 출근에 책상엔
미니선풍기 "아~시원해"

냉방온도 제한한 공공기관
"출근하자마자 숨이 턱~"
지난해 여름 더위는 ‘역대급’이었다. 낮 최고 기온이 33도를 웃돈 폭염일수는 31.5일, 야간 기온이 25도 이상인 열대야는 23.8일에 달했다. 역대 최장 기간이다. 올해는 이보다 더 오래 가마솥더위가 이어질 것이란 예측이 많다.

작년 폭염에 덴 김과장 이대리들이 일찍부터 ‘더위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미니 선풍기를 두 개씩 구입하고, 시원하게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하기 위해 금쪽같은 아침잠까지 줄인다. 회사도 반바지 출근을 허용하는 등 직원들을 위한 ‘냉방 복지’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럼에도 더위를 피하긴 쉽지 않다. 쿨비즈룩에 대한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회사마다 냉방 사정이 다른 현실도 야속하기만 하다. 김과장 이대리들의 힘겨운 ‘여름살이’를 들여다봤다.
[김과장 & 이대리] "작년처럼 폭염 시달릴라"…힘겨운 직장인 여름나기

시원한 ‘반바지 출근’, 안 될까요?

싱가포르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리콴유 전 총리는 에어컨을 ‘싱가포르 성공의 1등 공신’으로 꼽았다. 그는 생전에 펴낸 자서전에서 “에어컨 덕분에 더운 싱가포르에서도 하루 24시간 경제활동이 가능해졌다. 총리가 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공공기관에 에어컨을 설치해 업무 효율을 높이는 일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냉방 복지가 여름철 생산성을 좌우한다는 건 기업들이 누구보다 더 잘 안다. 시원한 업무 복장을 직원들에게 권장하는 쿨비즈룩 도입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SK이노베이션 현대자동차 케이뱅크 등은 여름철 임직원에게 반바지 착용을 허용한다. 공무원도 예외는 아니다. 2012년 서울시를 필두로 경기도, 수원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은 반바지 근무를 앞다퉈 허용했다.

여름나기 아이템을 공동구매하는 회사도 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모 대리는 온갖 피서 아이템으로 중무장했다. 책상에는 보조배터리에 연결해 사용하는 휴대용 선풍기를, 책상 아래에는 발과 종아리를 시원하게 해 주는 일명 ‘발 선풍기’를 뒀다. 의자엔 바람이 잘 통하는 쿨방석을 깔았다. 거래처와 협의해야 할 일이 생기면 정장 안에 쿨토시를 입고 나간다. 고객을 만날 때 와이셔츠 소매의 단추를 잠그기만 하면 밖으로 티가 나지 않는다. 모두 회사 직원들과 함께 공동구매로 저렴하게 산 물건이다.

하지만 좋은 지침도 ‘그림의 떡’일 때가 많다. 반바지는 물론 반팔셔츠 차림마저 탐탁지 않게 보는 시선이 여전해서다. 공공기관은 더하다. 지난 3일 허성무 경남 창원시장이 “직원들이 나보다 보수적이라 나라도 솔선수범하겠다”며 반바지를 입고 시청에 출근하는 퍼포먼스를 벌일 정도다. 서울시의 한 공무원은 “반바지를 입은 공무원을 예의 없다고 생각하는 민원인이 많다”며 “정보기술(IT)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샌들까지 신고 다니는데, 쿨비즈룩 착용 지침이 있어도 정장을 입어야 하는 현실이 야속하다”고 토로했다.

냉방 사정이 가른 ‘삶의 질’

직장마다 ‘체감 온도’는 천차만별이라는 게 김과장 이대리들의 전언이다. 서울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이 과장은 편안한 라운드티셔츠에 시원한 소재의 면바지를 입고 출퇴근한다. 회사 내 냉방도 잘 돼 카디건을 챙겨입고 근무할 때도 많다. 그는 “지난해 자취방 에어컨이 고장 났을 때는 집에 가기 싫은 마음까지 들었을 정도”라며 웃었다.

반면 생활용품기업에 다니는 황 사원(29)은 최근 모니터 절반 크기의 탁상용 선풍기를 두 개나 구매했다. 그는 “추위를 많이 타는 직원들이 에어컨 온도를 높여달라고 요청하면서 사무실은 그야말로 찜통으로 변했다”고 털어놨다. 교육업체 영업사원인 김 주임의 유일한 ‘피서 아이템’은 손수건이다. 가방과 재킷 안주머니 등 곳곳에 손수건을 넣어놓고 땀이 흐를 때마다 닦아낸다. 김 주임은 “땀을 많이 흘리는 아버지에게 전수받은 비법”이라며 “더워서 힘들지만 땀을 닦아내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는지 여름에 오히려 실적이 더 좋다”며 웃었다.

아무리 더워도 마음껏 에어컨을 켤 수 없는 공공기관 직원들에겐 여름이 ‘고난의 계절’로 다가온다. 정부청사를 비롯한 대부분 공공기관은 냉방설비 가동 시 실내온도를 평균 28도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오후 6시 이후나 공휴일엔 아예 에어컨을 켤 수도 없다. 한 경제부처의 김모 사무관(35)은 “오전 9시 전 출근하자마자 녹초가 되고 저녁부터는 숨이 턱턱 막혀 정신을 잃는다”며 “야근할 때면 사무실에서 도저히 일할 수 없어 회사 앞 카페로 향한다”고 했다.

예외는 있다. 정부세종청사 길 건너편 민간 건물에 입주해 있는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 사무실은 웬만한 대기업 못지않게 시원하다. 한 행안부 공무원은 “건물 중앙에서 냉방을 통제하는 주체가 민간이기 때문에 정부의 온도 지침을 적용받지 않는다”며 “가끔 찜통더위 속에서 일하는 동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더위 피하다 ‘의외의 수확’ 얻기도

출근길 ‘지옥철’을 피하기 위해 출근 시간까지 앞당기기도 한다. 전자회사에 다니는 김모 책임은 얼마 전부터 새벽에 집을 나선다. 목적지는 회사 근처 헬스장. 땀 흘려 운동하고 샤워를 마치면 오전 8시다. 김 과장은 “지난해 여름 감기가 폐렴으로 악화돼 입원까지 했었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지옥철이 싫어 운동을 시작했는데, 체력이 좋아져 업무 효율이 올랐다”고 말했다.

출근한 뒤 일정 시간만 근무하면 자유롭게 퇴근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를 활용하는 이도 많다.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모 대리(30)는 오전 7시에 출근하고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유연근무제를 시작했다. 퇴근 후에는 영어공부를 하고 칵테일학원에서 조주기능사 자격증 공부를 한다. 그는 “처음에는 이상하게 여기던 주변 동료들도 함께 유연근무제에 동참해 각자 취미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더위를 피하려다 동료애가 생겨나기도 한다. 한 대형 건설사 안전혁신팀에 근무하는 박 과장은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위해 아이스박스, 쿨스카프, 쿨토시를 준비했다. 회사 로고가 적힌 점퍼를 벗고 출근한다는 지침을 정하고, 노동조합과 협의해 아이스크림을 간식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는 “워낙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이라며 “‘역지사지’로 생각해서 한 일”이라고 했다. 이후 서먹하던 현장 인력들과 급격히 가까워졌고, 업무 효율이 오른 건 물론 퇴근 후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는 ‘형님’들도 많이 생겼다고 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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