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고법판사 쓴소리 "외교엔 사법부도 정부 협조하는게 국제 관례"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해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외교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사법부가 행정부 입장을 존중해주는 것이 국제적 관례”라며 “민감한 재판은 국제 중재나 국제형사재판소(ICJ) 등 제3자에 판단을 맡겼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14·사진)는 최근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한 국가 안에서 정부와 사법부가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행정부의 주도 아래 하나의 통일된 의견이 제시되는 것이 국제법상 관례”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일본의 보복에 대해 “민주주의 삼권 분립의 원칙에 반하는 경제 보복”이라고 반박한 것을 다시 비판한 것이다. 그는 “국제법적으로 ‘원보이스룰(onevoice rule)’이 있어 선진국 사법부는 대다수 외교적인 부분에 대해선 행정부 입장을 존중해줬다”고 소개했다. 그는 “일본이 최고재판소 재판관 15명 가운데 1명을 외교관(비법조인)으로 정하고 있는 것도 이런 국제법적 기조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 대법원도 자국내 법무부 송무차관이 의견을 개진하면 대부분 수용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승태 사법부가 일본 강제징용 재판에 대해 시간을 끈 배경엔 이 같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당시 청와대와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이 사전 협의한 것을 두고 '사법농단'으로 규정하고, '직권남용', '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로 기소했지만 이번 일본 보복을 계기로 재평가가 이뤄져야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는 "많은 국제법 전공 교수는 법원이 한·일 청구권 협정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지 않고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구권 협정 내용에서 제외된 종군 위안부, 원자폭탄 피해자, 사할린 징용 등에 대해선 정부가 적극적으로 보상을 요구 하는 것이 맞지만 그 외 보상에 대해선 국제법으로 좀 더 검토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노 코멘트”라며 “판결 사유가 상세히 나오지 않은 것은 일본이 봤을 때 아쉬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최명섭 변호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한일 관계가 이 지경이 되도록 몰아간 주범은 누구인가”라며 “법원과 검찰도 한 몫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법원은 단순히 법률만 해석하는 3심 법원이 아니고 정책법원의 성격을 갖는다”며 “2012년 일본기업에 대한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주심 김능환)은 법리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으로 얻을 개인적 유익이 뭐가 있겠나"며 직권남용으로 일제강제징용 재판과 엮은 검찰을 비판했다. 또 검찰에 대해서 “양 전 대법원장이 법리적, 정책적 검토를 위해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려고 한 행위를 범죄로 엮었다”며 “대법원장이 국익과 직결되는 중요한 판결을 앞두고 청와대, 외교부, 상대국, 대리인의 의견을 듣는게 어떻게 죄가 되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부터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대규/신연수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