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정 /사진=연합뉴스
고유정 /사진=연합뉴스
검찰이 결국 시신을 찾지 못한 채, 고유정을 기소했다.

1일 고유정을 재판에 넘긴 장기석 제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에 따르면 고유정은 전남편 강모(36)씨의 성폭행을 피하려다 우발적으로 범행했다는 주장만 되풀이할 뿐, 일관되게 진술을 거부해 왔다.

검찰이 적용한 고유정의 혐의는 살인과 사체손괴 등 세 가지.

고유정은 지난 5월 25일 제주시 조천읍 모 펜션에서 강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해 최소 3곳 이상의 다른 장소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고유정은 강씨를 살해한 뒤 5월 26∼31일 사이에 이 펜션에서 피해자의 시신을 훼손해 일부를 제주 인근 바다에 버리고, 가족이 별도로 소유한 경기도 김포의 한 아파트에서 나머지 시신을 추가로 훼손해 쓰레기 분리시설에 버렸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전 남편의 시신을 끝내 찾지 못해, 애초 적용하려던 사체유기 혐의는 뺐다.

경찰에 이어 검찰도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했다는 고유정 진술 외에 범행 동기 등은 밝혀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고유정이 미리 준비한 졸피뎀을 강씨 음식물에 넣어 먹인 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비록 시신을 찾지는 못했지만, 검찰은 전 남편의 DNA가 나온 흉기 등 증거물이 89점에 달하는데다, 고유정이 미리 범행방법을 검색하고 도구를 구입하는 등 정황이 충분해, 혐의 입증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고유정을 10차례 불러 조사했지만, 고유정이 "기억이 파편화돼 정리가 안 돼 진술할 수 없다"며 일관되게 진술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고유정은 이에 대한 근거로 자신이 부상당한 손 등을 증거보전 신청했다.

정상이 참작돼 형량을 줄여보려는 의도로 해석되지만 검찰은 고유정이 살해 다음날 '성폭행 미수 처벌' 등을 검색한 점으로 미뤄, 이런 주장조차 계획한 것으로 판단했다.
고유정 사건 피해자 유해 찾는 경찰 (사진=연합뉴스)
고유정 사건 피해자 유해 찾는 경찰 (사진=연합뉴스)
또, 고유정이 성폭행을 피하려던 증거라며 증거보전을 신청한 오른손의 상처도, '자해' 또는 '공격'으로 일어난 상처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10회에 걸쳐 고유정을 소환해 ‘진술하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계속해서 진술을 거부하는 상황이라 한계가 있었다”며 “객관적인 범행 동기와 사건을 규명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장례식이라도 치를 수 있게 해달라는 유가족의 간곡한 청원에도 불구하고 고유정이 '기억이 파편화됐다"는 주장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형량을 줄이기 위해 변호인 측에서 조언이라도 한 것일까.

고유정은 범죄를 계획한 5월 22일 제주시 한 마트에서 표백제와 부탄가스, 비닐봉투, 칼 등 범행도구 구입하고 포인트까지 적립하는 등 평소 주부로서 해왔던 습관적인 행동을 이어갈 정도로 냉정함을 유지했다.

이후 25일 오후 8시~9시16분 다른 방에 강씨와 사이에 낳은 아들이 게임을 하고 놀고 있는 상황에서도 제주시 조천읍 펜션에서 전남편을 살해하고 다음날 펜션 내에서 시신을 훼손했다.

일반인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고유정이 제주서 버린 물체 찾아라 (사진=연합뉴스)
고유정이 제주서 버린 물체 찾아라 (사진=연합뉴스)
이어 27일 오후 피해자 유족이 경찰에 피해자 강씨 실종 신고를 한 뒤인 28일 오후 3시27분 마트에서 산 표백제와 드라이버 공구세트 등 남은 범행도구 환불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찝찝해서'가 환불 이유였다.

정신과 전문의인 이계성 인천참사랑병원 원장은 "기억을 평가할 때 선행기억인지 후행기억인지가 중요한데 이벤트가 벌어지기 이전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경우는 별로 없고 일어난 후 기억이 조각나는 경우는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기억이 파편화 됐다는 것은 이후 극도의 흥분상태가 지속됐다면 그런 상황이 가능할 수 있겠지만 이번 고유정 사건에서와 같이 사건 이후 모든 행동이 치밀하게 행동됐는데 기억이 안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범죄사실을 축소하거나 벗어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쓴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들이 옆 방에서 놀고 있는 동안 그 아이 아빠를 살해하고 시신까지 훼손했으며 남은 범행도구를 환불까지 한 치밀한 고유정이 이제와 '기억이 파편화 됐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범행 동기, 범행방법, 시신 유기장소 등 모든 정황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이 어떤 명백한 증거도 찾아내지 못할 것이란 자신감의 표현으로 추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가헌 서울시 공익변호사는 "피의자 측 변호인이라면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라고 조언 할 수는 있다. 증거가 충분치 않으면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편이 유리하다"면서도 "'기억이 파편화됐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쓰이는 표현이 아니라 조금은 의아하다.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다라는 점으로 어필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고유정의 범행에 대해 "극단적인 인명 경시 살인"이라고 판단했는데, 받아들여질 경우 법원의 살인죄 양형 기준상 가장 중한 형량을 받게 된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