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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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를 사칭한 신종 보이스피싱이 활개를 치고 있다. 검찰총장 후보인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가짜 날인이 찍힌 공문과 검사 명함, 재직증명서 등을 보여주며 ‘검찰 수사’를 가장하는 등 날로 그 수법이 교묘해져 서민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지난 6월 20일 발생한 신종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피해자가 받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싸인이 들어간 허위 공문. 사건번호, 담당 검사 이름을 비롯해 빼곡하게 근거 법률이 나열돼 있고, 서명도 있다. /사진=피해자 페이스북
지난 6월 20일 발생한 신종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피해자가 받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싸인이 들어간 허위 공문. 사건번호, 담당 검사 이름을 비롯해 빼곡하게 근거 법률이 나열돼 있고, 서명도 있다. /사진=피해자 페이스북
서울에 거주하는 40대 김모 씨는 지난 20일 오후 1시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수사관이라고 밝히며 “김씨 명의가 도용돼 대포통장이 만들어져 사기 범죄에 사용됐다. 현재 피해자가 200명에 달하고, 피해금액은 120억원 정도다. 수사에 협조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다시 서울중앙지검 박모 검사에 전화를 연결시켜주며 김씨 휴대폰이 해킹을 당한 이력이 있는지 검사하겠다며 구글플레이 스토어에서 ‘팀뷰어’라는 응용프로그램(앱)을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날인이 찍힌 ‘수사협조의뢰’ 공문, 수사 담당 검사의 명함과 재직증명서를 잇따라 보여주며 김씨를 안심시켰다. 공문엔 윤 지검장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의 날인이 찍혀 있었다. 사건번호, 담당 검사 이름을 비롯해 빼곡하게 근거 법률이 나열돼 있고, 서명도 있었다.
지난 6월 20일 발생한 신종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피해자가 초대된 ‘검찰 명의’ 카카오톡 대화방에 담당 검사의 허위 명함과 재직증명서, 공무원증 사진이 올라와 있다. /사진=피해자 페이스북
지난 6월 20일 발생한 신종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피해자가 초대된 ‘검찰 명의’ 카카오톡 대화방에 담당 검사의 허위 명함과 재직증명서, 공무원증 사진이 올라와 있다. /사진=피해자 페이스북
김씨는 팀뷰어를 찾아 휴대폰에 설치했다. 팀뷰어는 휴대폰 원격제어 애플리케이션이다. 이들은 몇분뒤 다시 김씨에게 전화해 팀뷰어로 입수한 휴대폰내 개인정보와 실제 정보를 비교하며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다. 서울중앙지검 조사실로 위조한 사무실을 영상 통화로 보여주며 “조사에 성실히 응해 피해자로 보상을 받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수사중인 사건 내용을 외부에 발설하면 범칙금 2000만원이 부과될 수 있다. 피해자로 인정받으면 국가가 136만원을 보상해줄 것이다”라며 김씨를 별도의 검찰 로고가 뜬 카카오톡 대화방에 초대해 개인정보를 캐물었다. 조사 중간마다 “범죄 피해를 막기 위해 절대로 개인 주민등록번호나 계좌 비밀번호를 발설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등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낌새가 이상하다고 느낀 김씨는 한참 후 서울중앙지검에 실제로 전화를 걸어 공문에 나온 사건번호와 담당 검사의 진위 여부를 확인했고, 이들이 검사를 사칭한 4인조 보이스피싱 조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김씨는 곧바로 팀뷰어 앱을 삭제하고, 은행 계좌 비밀번호를 모두 바꿔 금전적 피해 발생을 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보통 검찰 수사를 가장해 개인정보를 취득한 뒤 대출을 받거나 현금을 전달 받는 수법으로 금전적 피해를 입히는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그동안 보이스피싱은 조선족 어눌한 말투로 아들이 교통사고가 났다느니 부모님이 쓰러지셨다느니, 돈을 보내라고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오히려 개인정보 보호를 당부하며 돈을 일절 요구하지 않아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20일 발생한 신종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피해자가 받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날인이 찍힌 허위 ‘수사의뢰협조’공문. 실제 검찰 공문서 양식과 다르고, 검찰은 피해자나 참고인, 피의자에게 이같은 공문을 보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사진=피해자 페이스북
지난 6월 20일 발생한 신종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피해자가 받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날인이 찍힌 허위 ‘수사의뢰협조’공문. 실제 검찰 공문서 양식과 다르고, 검찰은 피해자나 참고인, 피의자에게 이같은 공문을 보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사진=피해자 페이스북
검찰 관계자는 “법을 잘 모르는 일반 국민을 상대로 검찰 수사를 사칭한 범죄는 더 엄정히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검찰은 공공기관 사이에 공문을 보낼 뿐, 조사대상자나 피해자, 피의자 개인에게 수사의뢰공문을 보내지 않는다. 이번 사건의 피해를 입힌 가짜 공문도 진짜 공문과 양식이 많이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수사 내용을 외부에 발설하면 부과되는 범칙금 조항 자체가 없을 뿐더러 사기 피해자에 대해 국가가 보상해주는 제도도 없다. 사기 피해자는 민사소송을 거쳐야 보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검찰을 사칭해 전화로 이것저것을 캐물을 경우 보이스피싱일 확률이 높다는 게 검사들의 전언이다. 검찰 관계자는 “검사나 수사관이 일반 국민에게 처음으로 전화를 할 때는 통상 ‘어떤 날짜에 나와서 조사에 임해달라’는 정도일 뿐 자세한 내용을 전화로 조사하지 않는다”며 “자세한 개인정보나 금융정보를 전화로 물어보는 사례도 없고, 앱을 깔라고 요구하거나 별도 카카오톡 대화방을 개설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4월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1992억원이었다.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자는 지난해 4만8743명으로, 올해는 5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폰에 설치하는 순간 각종 금융 정보가 통째로 넘어가는 ‘전화 가로채기 앱’ ‘원격조종 앱’ 등을 활용해 갈수록 수법이 고도화되면서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검찰이나 경찰, 금융감독원 등을 사칭한 ‘사칭형’ 보이스피싱 피해액도 지난해 1346억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피해액(4440억원)의 30.3%에 달한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