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을 거부한 사연자가 있다. 다들 못 들어가서 안달인 공기업을 그는 무슨 까닭으로 나왔을까.

퇴사의 이유 2화의 사연자인 김 대리는 공기업에서 2년 간 일하다 작년 말 사표를 던졌다. 김 대리가 입사할 때도 경쟁률은 대단했다. 지원했던 직렬에서만 경쟁률이 50대 1에 달했다.

열심히 준비한 끝에 해당 직렬에서 무려 수석 입사한 김 대리. 부푼 꿈을 안고, 사업 관련 부서로 발령받았지만 막상 근무해보니 생각과는 달랐다.

“사업하는 팀에서 사업은 부차적이었고 문서작업이 엄청나게 많이 있더라고요.”

김 대리 앞에 놓여진 문서작업은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 그를 지치게 했던 것은 비용처리 작업. 공기업 특성상 재정의 투명성을 담보해야 하다보니 사무실에 필요한 비품 하나를 구입할 때도 절차가 복잡했던 것.

가령 믹스커피 한 상자를 살 때 조차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다.

1)먼저 예산을 확인한 뒤
2)예산에 맞춰서 기안문을 작성해 상부에 결재를 받았다. 그 다음에는
3)법인카드를 받아서 실제로 커피를 사오면
4)법인카드 영수증을 종이에 풀로 붙이고, 스캔을 떴다. 이후
5)계획한대로 실제 돈을 썼다는 지출결의서를 작성해 또다시 상부에 결재 받았다. 그렇게 지출을 하고 나서는
6)연말이나 분기 말에 모든 지출 내역을 다 모아서 보고했다.

회계업무를 위한 직원을 따로 두지 않고, 모든 비용처리를 직원들이 직접 해야 하는 이유가 김대리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김 대리가 토로한 '절차' 문제는 또 있었다. 공공기관 디도스(DDOS, 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를 예방하기 위해 공공기관 PC에서는 인터넷 사용이 제한되기 때문에 벌어지는 비효율이었다.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이곳 저곳에 메일도 보내야 하고, 서류나 공문 등을 주고받을 일도 많다. 공기업에서는 그 때마다 컴퓨터 내 가상PC 프로그램에 들어가 인터넷에 접속한 뒤, 파일을 외부로 주고 받기 위한 결재를 재차 받아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설상 가상으로 팀에서 인터넷으로 파일을 주고받을 때 결재자 역할을 김 대리가 맡게 되면서 야근과 주말근무에 시달리게 됐다. 팀원 중 한명이 야근을 하면 김 대리도 결재를 하기 위해 함께 대기해야 했다. 근무시간을 준수해야 하는 공기업이기 때문에 이렇게 근무해도 야근수당이나 주말수당은 받을 수 없었다는 게 김 대리의 설명이다.

이런 근무환경에서도 김 대리는 본 업무인 사업을 잘 해내기 위해 열정을 쏟았다. 하지만 열심히 준비한 행사는 김 대리가 사표를 쓴 계기가 됐다. 팀원 여럿이 힘을 합쳐야 했던 행사였지만 연차 높은 상사들이 준비 기간에 휴가를 다녀오는 등 아무런 참여도 하지 않았다.

“저는 정말 열심히 했는데 몇분들은 진짜 일을 안하고 정말 편하게 빨리 집에 가고. 속된 말로 '배째라' 식으로 나가셨어요. 그 뒤 다행히도 행사가 잘 진행 되긴 했지만, 모두의 공이 됐습니다. 제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는 표가 안 나더라고요. 억울했죠.”

이렇게 '프리라이더'가 생겨나는 구조적 이유로 김 대리는 공기업 특유의 해고하지 않는 분위기와 호봉제를 꼽았다. 일을 하지 않아도 버티기만 하면 차장으로, 부장으로 승진하는 분위기였기에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만 바보가 된다는 얘기다.

해당 공기업에서 근무성과 보다는 사내정치가 인사평가에서 더 큰 힘을 썼다고도 김 대리는 지적했다. 부하직원의 인사평가를 상사 개인이 전적으로 내리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일례로 윗사람이 술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제가 안가고 뻐튕기면, 지사도 많기 때문에 '마음에 안든다' 그러면서 저를 진짜 오지에 발령을 낼 수도 있는 거예요.”

상사에게 밉보였다가는 회사생활 뿐 아니라 험지로 발령받는 등 인생이 꼬일 수도 있었다는 게 김 대리의 설명이다. 결국 이런 분위기에서 그는 일보다는 사내정치에 목숨을 걸거나, 지금처럼 다른사람 몫까지 혼자 떠안고 근무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여러 고민 끝에 김 대리는 사표를 냈다. 그만둔다는 얘기에 회사 상사는 화를 냈다. 그가 팀내 업무를 대부분 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괘씸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 많은 일들을 떠안게 될 동기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도 컸던 김 대리였다.

그가 얘기하는 ‘일하고 싶은 조직’은 공정하게 평가받는 회사였다. 사내정치를 하지 않아도 실력으로 평가받고, 높은 직위를 악용해 아랫사람에게 일을 떠맡기지 않는 조직에 몸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는 일하는만큼 성과가 나오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퇴사의 이유에서 사연을 받습니다.

억울한 대우를 받아서, 부당한 조직문화에 지쳐서 등 퇴사를 결심하기까지의 이야기를 dilive@hankyung.com 혹은 hkdlive@naver.com으로 보내주세요. 위로와 공감되는 영상으로 속시원히 풀어드리겠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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