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에게 1조원에 달하는 예산편성권한을 맡기겠다는 ‘서울민주주의위원회’ 신설안이 시의회에서 만장일치로 부결됐다. 민주당이 절대다수인 시의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요 공약사업이 부결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는 17일 ‘서울민주주의위원회’를 신설하는 내용의 ‘행정기구 및 공무원 정원 조례 개정안’을 소속 의원 12명 만장일치로 부결시켰다. 서울민주주의위원회는 위원회에 참여한 시민이 사업을 짜고, 예산편성까지 하는 민관 합의체 행정기관이다. 서울시는 올해에만 2000억원 규모 사업에 대한 예산 편성권한을 부여할 계획이었고, 2021년까지 약 1조2000억원의 예산을 배정키로 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민선 7기 선거 때부터 핵심 공약 가운데 하나로 내걸었던 사업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이달 시의회에서 조례를 통과시키고, 다음달 중순 위원회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상임위에서는 이같은 서울민주주의위원회 자체가 시의회를 사실상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시민들이 서울시가 제출한 사업과 예산을 심의하라고 시의원들을 뽑았는데, 서울시가 구성한 위원회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시의회를 무력화한다는 지적이다. 권수정 정의당 시의원은 “시민들이 뽑은 시의원들이 서울시가 제출한 예산을 숙의하고 최종예산안을 내고 있다”며 “서울시 한 해 예산이 40조원인데 1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서울민주주의위원회에 넘긴다는 것은 사실상 시의회 권한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민주주의위원회가 특정 시민단체를 끌어들이기 위한 조직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채인묵 시의원은 “서울민주주의위원회 위원 참여요건으로 5년 이상 실무경력을 전제하고 있는데, 사실상 시민사회단체 경력이 없는 사람은 위원회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특정단체를 끌어들이기 위한 조직 아니냐”고 했다.

한편 박 시장과 신원철 서울시의회 의장은 18일 기자설명회를 하기로 했으나 조례 개정안 부결로 일정을 취소했다. 서울시 측은 시의회와 협의를 통해 직권상정도 검토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일단 부결된 경위와 상임위 의원의 의견을 듣고 있다”면서도 “의회 측과의 협의를 통해 직권상정할 가능성도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