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경기 고양시 식사동의 한 골재 선별·파쇄업체에 골재가 쌓여 있다.  /이주현 기자
지난 5일 경기 고양시 식사동의 한 골재 선별·파쇄업체에 골재가 쌓여 있다. /이주현 기자
지난 5일 경기 고양시 식사동의 골재 선별·파쇄업체. 인근 공사 현장에서 가져온 암석들이 4m 높이 파쇄기 속으로 들어가면서 희뿌연 모래바람을 일으켰다. 모래먼지를 막는 가림막이나 물을 뿌려주는 장치는 찾아볼 수 없었다. 5m 높이로 쌓인 골재에는 방진막이 덮여 있지 않아 대형트럭들이 이동할 때마다 수시로 모래먼지가 일어났다. 이 사업장 인근 연립주택에 거주하는 이모씨(50)는 “25t 트럭이 길목을 지나갈 때마다 먼지를 일으키기 때문에 집 근처를 오갈 때 마스크는 필수”라고 하소연했다.

고양·시흥·포천·하남·남양주 등 수도권 일대 주민들이 때아닌 모래먼지 바람에 시달리고 있다. 건설 공사 현장과 가까운 이들 지역에 모래 등을 채취하는 골재 선별·파쇄업체들이 생겨나고 있어서다. 정부가 바닷모래 채취를 금지하는 바람에 파쇄골재 수요량이 급증해 나타난 결과다. 반면 바다골재업체들은 도산 위기에 직면해 생존권 투쟁에 나섰다.

“주택가에서도 골재 파쇄 가능”

7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한국골재협회 인천지회 회원들이 바다골재 채취 허용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7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한국골재협회 인천지회 회원들이 바다골재 채취 허용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골재 선별·파쇄업체들은 터널 굴착, 아파트 터파기 등의 공사 현장에서 나온 암석들을 잘게 부숴 모래로 만드는 작업을 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골재 선별·파쇄업체는 전국 924곳(작년 기준)으로 집계됐다. 전년(895곳)보다는 29곳 늘어났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대에서만 208곳의 골재 선별·파쇄업체가 영업 중이다.

선별·파쇄골재는 운송비가 골재 단가의 50~60%를 차지한다. 모래를 만드는 사업장과 모래 암석을 공급하는 공사현장이 가까울수록 운송비를 절감해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구조다. 주민 민원이 폭주해도 공사현장이 많은 수도권에 골재 선별·파쇄업체들이 들어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는 골재채취법상 골재 선별·파쇄업장은 지방자치단체에 신고만 하면 운영이 가능해 주택 근처에도 들어설 수 있다는 점이다. 이달 완공을 앞둔 고양시 문봉동의 한 골재 선별·파쇄업장 바로 옆 터에는 연면적 9900㎡ 규모의 요양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공사장 입구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 사는 주민 정모씨(71)는 “골재업체가 들어오지 않도록 주민들이 민원을 넣었지만 소용없었다”며 “먼지가 발에 밟히는 요양시설에 누가 오려 하겠냐”고 말했다.

바닷모래 채취 중단에 골재값 급등

요양병원 옆에 골재파쇄 업체…켁! 먼지 몸살 앓는 수도권 주민
수도권에 골재 선별·파쇄업체가 늘고 있는 것은 바닷모래 채취가 중단된 여파다. 2017년 1월 남해 배타적경제수역(EEZ), 지난해 말 서해 EEZ, 웅진·태안 연안 등의 모래 채취가 중단됐다. 해양 오염이 심각하다는 어민들의 반발을 해양수산부가 받아들인 데 따른 조치다.

2014년 2490만㎥에 달하던 바다골재 공급량은 작년 826만㎥로 67% 급감했다. 대신 선별·파쇄골재가 모래 수요를 대체하면서 선별·파쇄골재 공급량은 같은 기간 6039만㎥에서 8717만㎥로 44%가량 증가했다.

레미콘에는 바닷모래, 하천모래 등의 천연모래와 부순모래가 7 대 3의 비율로 들어간다. 바닷모래 공급이 줄어들면서 천연모래와 부순모래 비율을 5 대 5로 맞추다가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3 대 7로 사용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한국골재협회 관계자는 “품질보정비와 단가 상승으로 골재 1㎥당 1만원가량 비용이 늘어나 연 2조5000억원의 공사비용이 더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바닷모래 공급 중단이 장기화하면 공사비용 증가, 부실 공사 등의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수주한 공사비용을 맞추기 위해 불량 골재를 쓰는 사례가 나올 수 있어서다. 파쇄골재 가격은 ㎥당 1만4000~1만5000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20%가량 올랐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부실 콘크리트로 시공한 건물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바닷모래 채취가 중단되면서 바다골재업체들은 도산 위기에 직면했다. 인천 옹진군에서는 바다골재업체 15곳이 자본잠식 등 자금난을 겪고 있다. 한국골재협회 인천지회 소속 회원사 직원 250여 명은 7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바다골재 채취 허용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작년 9월 옹진군 일부 해역에서는 2023년까지 5년간 1785만㎥의 바닷모래를 채취할 수 있다는 정부 고시가 나오기는 했으나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이 어민들의 반대로 9개월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경복 한국골재협회 인천지회 사무국장은 “지난 2년간 바닷모래 채취 중단으로 5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며 “인천해수청이 법적인 근거 없이 바닷모래 채취를 막는다면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고양=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