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 여러 방법 동원해 이미 대규모 구조조정…전업강사들 생계 지장
전임교원 시수제한 필요…"지금은 문제 많지만 변화 첫걸음 되길"
강사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강사법…해고강사 지원 절실"
"교육부가 강사법 안착에 노력한다는데, 완전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죠. 이미 집 잃은 소가 겪은 피해는 어떻게 책임지나요?"
지난해 1학기를 끝으로 하나 남았던 강의 자리마저 잃은 철학 박사 A(45)씨는 5일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전날 교육부가 발표한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 안착방안에 관해 이렇게 촌평했다.

교육부가 강사법 시행 예고 8년 만에 법령 정비를 완료하면서 대학 재정지원사업과 강사 고용 안정성 연계를 골자로 한 제도 안착방안을 내놓았지만, 강사들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강사법이 2011년 개정된 후로 8년간 4차례에 걸쳐 유예되는 동안 강의 자리를 잃은 '해고 강사'가 이미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강사들은 "이미 해고된 강사를 위한 지원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교육통계와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2011년 9만231명이었던 시간강사는 2018년 6만1천639명으로 32%가량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전임교원은 7만995명에서 7만9천447명으로 약 12% 늘었다.

강사단체는 올해만 최대 2만명에 달하는 강사가 강의 자리를 잃었다고 주장한다.

교육부 역시 올해 1학기 강사 자리가 최소 1만개 줄어들 것으로 추산한다.

강사들에 따르면 대학들은 강좌 통폐합, 전임교원 강의 확대, 명예교수에게 강의 맡기기 등 여러 방법으로 강사를 줄이고 있다.

박사 B씨는 "강사들이 맡았던 교양과목이 대부분 대형 강의로 바뀌었다"면서 "특히 '비판적 글쓰기' 같은 글쓰기 관련 인문학 교양과목들이 1∼2학년이 함께 듣는 식으로 통합되면서 대형 강의로 바뀌고, 그마저도 전임교원이 맡은 경우가 늘어났다"고 전했다.

실제 올해 4월 대학 정보공시를 보면 올해 1학기 수강생이 50명을 초과하는 대규모 강의는 4만2천557개로 지난해보다 2천888개 늘어났다.

반면 수강생이 20명 이하인 소규모 강좌는 10만9천571개로 지난해 1학기보다 9천86개 줄었다.

강사 C씨는 "일부 교양 강좌는 온라인 동영상 강의로 바뀌었다"면서 "200만원 받고 14회차 강의를 찍었더니, 그대로 5년 동안 돌려서 누적 수강생 수가 1만명 가까이 됐더라"면서 "최근에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들으나 마나 한 '옛날 이론'을 배운 셈"이라고 꼬집었다.
강사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강사법…해고강사 지원 절실"
강의가 곧 생업인 '전업강사'들은 당장 생계유지에 지장을 겪을 수준이라고 말했다.

교육통계에 따르면 2008∼2017년 전체 대학 강사 중 전업강사 비율은 55∼60%로 비전업강사보다 매년 많았다.

지난해까지 3개 대학에서 6개 강의를 맡았다는 강사 D씨는 "올해 1학기에 1개 대학 1과목으로 강의가 줄어, 생계는 배우자 수입에 기대고 있다"면서 "한 선배 강사는 4개 대학에 11개 과목을 맡았던 인기 강사였는데 선배도 1개 대학 1과목으로 줄었다며 헛웃음을 짓더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4대 보험료나 퇴직금 부담이 없는 겸임교원을 선호하는 통에 겸임교원 자격을 얻기 위해 가짜 '1인 연구소' 사업자등록을 낸 강사도 있다.

아예 대학에서 강사들에게 이런 방식을 요구하기도 한다는 게 강사들 이야기다.

교육부는 전업강사의 고용 변동 폭 위주로 강사 고용현황을 조사하고, 지난해보다 강사가 많이 줄어든 대학에 방학 기간 강사 임금을 적게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학 혁신지원사업 등 재정지원 사업에도 강사 고용 관련 지표를 반영하기로 했다.

강사단체 측은 강사들의 강의 자리를 보장하고 전임교원의 강의 부담을 덜어 연구를 활성화하려면 '전임교원 강의시수 제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이 제도는 대학측 반대로 시행령과 매뉴얼에선 빠졌지만 한국비정규교수노조는 전임교원 강의시수를 '9학점 이하' 정도로 제한하는 방안을 앞으로도 계속 요구할 방침이다.

이는 전임교수들도 원하는 바다.

지방 사립대의 E교수는 "학교 측이 강사를 줄이는 대신 전임교원 강의 시수를 늘리는 바람에 다음 학기에 5개 강의를 맡는 교수도 있다"며 "강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학생들에게도 피해가 간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강사법은 돈 안 쓰려는 대학에만 좋은 법 같다"고 비판했다.

법에 따라 강사를 공개 임용하더라도 대학들이 해외 석·박사나 '명문대'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강사 F씨는 "대학에서 '공개 채용은 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하지만 형식적인 절차로 생각하면 된다'고 하더라"면서 "공고도 나지 않았는데 이미 내정자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했다.

여러 문제가 있지만 일단 이런 식으로라도 강사 권익 보장을 위한 노력을 시작하는 데서 의미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지방 국립대의 한 교수는 "지금은 문제가 많지만 앞으로 점차 자리가 잡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있다"면서 "시간강사에게도 정당한 교원 지위를 보장하는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