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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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군의 한 면사무소 공무원 A씨는 지난 3월 군민 B씨로부터 15번째 고소를 당했다. A씨가 영동군청 환경과에 근무하던 2012년 B씨가 운영하던 폐기물처리업체에 방치폐기물을 조치하라고 행정명령을 내렸던 게 발단이었다. 공무원이 사업을 방해한다고 생각한 B씨는 허위공문서 작성, 허위공문서 행사, 직무유기 등 각종 혐의를 들어 10번 넘게 A씨를 상대로 고소장을 냈다. A씨는 2016년 7월 군청에서 면사무소로 소속을 바꿨지만 그 뒤에도 B씨의 고소는 계속됐다. A씨는 “B씨 고소때문에 6시간씩 검찰조사를 받는 날도 있었다”며 “적법한 행정명령이었는데 7년째 고통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소송왕’ 진화하는 악성 민원인들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고소, 고발을 남발하는 민원인들때문에 일선 공무원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혼자서 수백, 수천회씩 민원을 넣거나 담당 공무원을 찾아와 소란을 피우며 ‘악성 민원인’으로 분류되던 민원인들이 이제는 법을 무기로 삼아 ‘소송왕’으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20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작년 공무원이 피의자인 범죄 접수건 수는 3만 6872건에 달한다. 2만 738건이었던 2014년에 비해 77%(1만 6133건)가 늘었다. 이처럼 공무원 범죄 접수건 수가 폭증한 것은 민원인이 공무원을 대상으로 ‘일단 걸고 보는’ 고소, 고발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지난해 접수된 공무원 범죄 중 소송의 대상이 되지 않거나 요건도 갖추지 못해 각하된 건 수는 1만 6281건으로 전체의 44%에 육박한다. 각하건 수는 2014년 4486건에서 3배 이상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전체 접수건 수 중 각하건 수가 차지하는 비율인 각하율도 같은 기간 21%에서 44%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법조계 관계자는 “그만큼 뚜렷한 범죄 혐의점을 찾을 수 없는 고소, 고발이 많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접수건 수 중 검찰이 재판에 넘긴 비율인 기소율 역시 2014년 19%에서 작년 9%로 10%포인트 가량 줄었다. 지난해 전체 범죄에 대한 검찰의 평균 기소율이 31.4%였던 것과 비교해보면 턱없이 적은 수치다.

◆인사혁신처 ‘소송지원 법률상담서비스’까지 시작해

민원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민원인을 직접 상대할 일이 많은 부서를 중심으로 사기 저하가 심각하다”고 토로한다. 서울시 한 구청 소속 공무원은 “건축 관련 민원이 들어와 관련 과에 문의까지 해가며 적극적으로 응대한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민원인이 녹음 파일을 갖고 와 ‘약속한대로 하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더라”며 “꼬투리잡히지 않을 정도로만 애매하게 대답하는게 공무원들 사이의 불문율이 됐다”고 전했다.

공무원을 상대로 고소장을 냈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수사기관이나 수사 담당자를 상대로 소송전을 펴는 민원인들도 있다. 영동군 공무원 A씨는 “B씨 고소가 검찰에서 모두 불기소처분되거나 법원에서 각하됐다”며 “그러자 B씨가 사건을 담당한 청주지청 영동지원 수사관까지 고소했다”고 말했다.

공무원과 민원인이 법적 갈등을 빚는 일이 잦아지자 인사혁신처는 작년 12월부터 민원담당 공무원을 대상으로 ‘소송지원 법률상담서비스’까지 시작했다. 지자체가 아닌 중앙부처에서 이같은 서비스를 내놓은 것은 처음이었다. 각 지역별로 변호사를 위촉해 피소됐을 때 대응을 돕고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민원인이 있으면 소송을 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 하지만 “공무원이 시민을 상대로 고소하느냐”는 여론에 대한 우려때문에 지금까지 자문을 진행한 건 수는 23건에 불과하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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