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잊을만하면 터지는 화학사고…더이상 못 참겠다"
'악취로 어지럼증에 구토까지' 한화토탈 사고에 주민 분통
"아침부터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서 악취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냄새 때문에 눈이 따갑고 어지러운 것은 물론 구토까지 하는 어르신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유증기 유출 사고가 발생한 충남 서산시 대산읍 한화토탈 대산공장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대죽1리 마을 이장 김기의 씨는 19일 오후 분통부터 터뜨렸다.

사고가 발생한 지 만 이틀이 지났지만,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이 적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사고는 지난 17일 낮 12시 30분께 스틸렌모노머를 합성하고 남은 물질을 보관하던 탱크에서 이상 반응으로 열이 발생하면서 시작됐다.

이 열로 탱크 안에 저장된 유기물질이 기체로 변해 탱크 상부로 분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스틸렌모노머는 스티로폼 등 합성수지를 제조할 때 원료로 사용되는 인화성 액체 물질이다.

소방서와 합동방제센터 등이 사고 발생 2시간 만에 유증기 발생을 차단했지만, 이미 대기 중으로 퍼진 유증기는 손쓸 방법이 없는 상태였다.

이 때문에 공장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눈이 따가워 눈을 뜰 수 없는 것은 물론 머리가 어지러워 제대로 서 있기조차 어려운 상태에 몰렸다.

일부 주민들은 수시로 헛구역질까지 했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한화토탈 측은 사고 발생 직후 유증기 유출 소식을 주민들에게 알렸다고 하지만, 모내기 준비가 한창인 영농철이어서 적지 않은 주민들은 제대로 소식을 듣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악취로 어지럼증에 구토까지' 한화토탈 사고에 주민 분통
이장인 김 씨도 모내기 작업을 위해 트랙터로 논을 갈아엎던 중 뒤늦게 소식을 알았을 정도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악취로 작업을 중단하고 확인해보니 한화토탈에서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그는 유증기 유출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요청에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식초 원액의 냄새를 맡았을 때의 수백 배 이상 되는 시큼한 악취가 눈과 코를 찌르기 시작하면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 마을에서만 17∼18일 이틀에 걸쳐 53명이 병원 진료를 받았다.

농촌 마을 특성상 주민의 상당수가 노인이어서 악취로 인한 피해가 더 큰 듯했다.

한화토탈 대산공장과 가장 가까운 독곶리 마을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시골마을이지만 바다 쪽으로 눈을 돌리자 석유화학단지의 엄청난 굴뚝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날은 한참 모내기 준비로 바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논에서 일하는 농민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고 발생 사흘째지만 주민들이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마을 이장 장석현 씨는 전했다.

전날 오후부터 내린 비와 다소 강한 바람이 악취를 대기 중으로 날려버렸지만, 주민들의 불안감까지 날려버릴 수는 없었다.
'악취로 어지럼증에 구토까지' 한화토탈 사고에 주민 분통
장 씨도 사고가 발생한 17일 여느 때처럼 논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유증기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화토탈 공장으로 뛰어갔다.

장 씨는 "그때는 냄새로 악취는 물론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우리 마을 바로 옆에서 이렇게 위험한 물질을 사용하는 공장이 돌아가는데 주민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석유화학단지에서 하루가 멀다고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며 "마을 주민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번 사고로 독곶리 주민 95명과 대죽리 주민 53명 등 한화토탈 대산공장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 320여명이 병원 치료를 받았다.

한화토탈이 위치한 서산시 대산은 울산, 여수와 함께 국내 3대 석유화학단지로 꼽히는 곳이다.

1980년대 조성된 대산석유화학단지는 3개 기업으로 출발했으나 현재 현대오일뱅크·엘지화학·롯데케미칼·한화토탈·KCC·코오롱인더스트리 등 60여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이 때문에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은 물론 잊을만하면 화학 사고가 터져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롯데케미칼 BTX 공장에서 발암성 물질인 벤젠 5∼6t가량이 누출되는 사고가 있었고, 지난달에도 서산시 지곡면 한 도로를 달리던 탱크로리에서 액체상태의 페놀 100여ℓ가 도로에 흘러내려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죽리 마을이장 김기의씨는 "우리는 석유화학기업이 입주하기 훨씬 전부터 이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면 살았는데, 기업이 들어오면서 주민들의 삶이 피폐해졌다"며 "잊을만하면 터지는 화학 사고로 주민들은 하루하루를 불안에 떨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