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적폐수사' 단골 소재, 직권남용죄가 '남용'되고 있다"
검찰의 ‘적폐수사 단골 법리’로 등장한 공무원의 직권남용죄에 대해 그 해석과 적용 범위를 제한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시와 복종 관계에 있는 공무원간 직권남용죄 적용은 신중해야하고 ‘중간관리자’에 적용하는 것은 제한적으로 이뤄져야한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 의견이다. 판례도 적고 법리도 명확히 확립되지 않은 데다 형량도 너무 높다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한국범죄방지재단이 ‘직권남용죄, 올바르게 적용되고 있는가’를 주제로 17일 개최한 제 40회 학술강연회(사진)에선 이 법에 대한 전문가들의 성토가 잇따랐다.

직권남용죄(형법 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것’으로 5년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정치적 악용소지 크다” 헌재재판관의 우려

형법학자인 이완규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전 부천지청장, 사법연수원 22기)는 이날 강연회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사건, 국군기무사령부의 ‘사이버 댓글’사건, 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등 직권남용 혐의 기소가 늘면서 과거 권성 헌법재판관이 낸 소수의견이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권 재판관은 2006년 직권남용 관련 위헌 소송에서 소수의견을 통해 “법원의 해석을 통해서도 직권을 남용한다는 의미를 파악해내기 쉽지 않고, 의무없는 일 역시 그 의미가 명확하다고 볼 수 없다”며 “결국 자의적인 해석과 적용의 여지를 남기고 있고, 이는 정권교체시 전임 정부의 실정과 비리를 들추어내거나 정치적 보복을 위해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고위공직자들을 처벌하는 데 이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직권남용죄에서 ‘직권’의 개념에 대한 학계의 다수설은 ‘강재력을 수반하는 직권’으로 제한적으로 해석해야한다는 것”이라며 “직권남용죄의 ‘남용’개념에 대해서도 당사자나 제3자의 이익을 위해 행사하는 경우에만 적용돼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형법과 거의 똑같은 일본 형법상 직권남용죄(제193조, 공무원이 그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의 행사를 방해하는 때에는 2년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한다)가 형량이 우리 나라보다 낮은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직권남용죄의 형량은 폭행이나 협박을 가해 개인의 의사를 억압하는 ‘강요죄’와 같은 수준이다.

◆‘지시-복종관계’,‘중간관리자’적용시 주의해야

이 변호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지시 복종관계의 직권남용죄’에 대해 엄격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공무원 사회에서 하급자는 상급자의 지시를 따라야할 의무가 있고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나라의 정책 기능에 마비가 온다”며 “지시를 따를 의무가 있기 때문에 통상 공무원을 처벌할때 복종한 하급자는 면책을 받고, 지시한 상급자만 처벌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지시권자가 명백한 불법을 지시한 것에 대해서는 거부할 책임이 하급자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중간직위자의 경우 직권남용죄로 처벌하는 것은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최근 중간관리자를 최종 결정권자와 공범으로 엮어서 기소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는 지시 복종에 대한 일반적 법리에 비춰보면 맞지 않다”고 했다.

강연에 나선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직권남용죄에 대한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직무권한에 대한 대법원의 해석이 들쑥날쑥”이라며 “남용의 개념 역시 ‘사각지대’가 생기는 등 형법상 법적 안전성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또 “직권남용죄에 대해 미수범 처벌 규정이 없다는 것은 입법론적으로 제고를 요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직권남용죄의 적용 범위는 넓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직권남용죄는 국민에 의해 위임받은 공권력의 행사가 정의롭고 공정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라며 “공무원의 지위가 올라갈수록 그 직무 범위의 반경이 넓어지기 때문에 명백한 직무권한을 남용하는 것을 넘어 권한 범위를 넘어선 월권적 행위를 했을 때도 직권남용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자조차 헷갈리는 법…국민들 어떻게 알고 지키나

이날 사회를 맡은 조영곤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전 서울중앙지검장, 연수원 15기)는 “직무 권한 남용의 구성요건이 너무 추상적”이라며 “대법원도 판결을 통해 그 개념을 구체화시키려고 노력했지만 동의어가 반복되면서 개념을 구체화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학자들조차 의견이 엇갈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 법을 공무원들이 어떻게 다 알고 지킬 수 있을 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김경한 재단 이사장(전 법무부 장관, 연수원 1기)은 개회사에서 “검찰에서 30년간 수많은 사건을 처리했으나 직권남용죄로 누군가를 기소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며 “무엇이 직권이고 무엇이 남용인지 애매모호해 범죄구성요건이 까다로운 범죄”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최근 2~3년사이 권력형비리 적폐수사에 단골로 등장한 법리”라며 “일각에선 직권남용죄 자체가 남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라고 말했다.

정홍원 전 국무총리(연수원 4기)는 축사에서 “판사에 대한 탄핵위협과 정부의 위법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통령의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수사 지휘 등으로 법치주의는 심각한 위험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범죄방지재단은 1994년 ‘범죄예방 및 범죄인 교화’의 목적으로 법무부 인가에 의해 설립됐으며 법무부 장관 출신인 정해창 변호사(고등고시 10회)가 명예이사장을, 같은 법무부 장관 출신인 김경한 변호사가 이사장, 이귀남 변호사가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