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강신명 전 경찰청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직권남용죄가 적용됐다. 이튿날 같은 죄명으로 기소된 이재명 경기지사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조계에선 직권남용죄 판단 기준이 명료하지 않아 판사 재량에 의존하면서 법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사 재량 커 ‘예측 불가’

강신명 구속, 이재명 무죄 직권남용죄 '고무줄 논란'
17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직권남용 관련 고소·고발 건수는 1만4345건으로, 매년 5000~6000건을 기록하다 2017년(9741건)부터 대폭 증가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원래 직권남용죄는 입증이 어려운 범죄라 실제 기소되거나 처벌받는 사례가 드물었다”며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적폐 청산’으로 전 정부 고위 공직자들이 관련 혐의로 대거 기소되면서 기준 논란이 불거졌다”고 설명했다.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상 권한을 남용해 타인에게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시키거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범죄다. 즉 직권남용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공무상 권한에 포함되는 행위여야 하고 △권한을 남용해 △하급 관청이나 공무원 등에 의무가 아닌 일을 시켜야 한다. 혐의가 인정되면 5년 이하의 징역과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법조계에선 직권남용죄 조문상 ‘직권’ ‘남용’ ‘의무’ 등 단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해 법적 명확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판사들마저 판례가 부족해 판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컨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에 특정 보수단체 자금 지원을 요구한 ‘화이트리스트’ 사건에서 하급심 판단이 엇갈렸다. 1심은 해당 행위가 비서실장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고 직권남용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이를 뒤집었다.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판사 사찰 문건 등을 작성하도록 시켰다는 혐의 등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에 대해서도 법조계에서는 유무죄 관측이 엇갈린다.

“정치보복 악용” vs “공권력 제한 필요”

한국범죄방지재단(이사장 김경한 전 법무부 장관)은 17일 ‘직권남용죄, 올바르게 적용되고 있는가’를 주제로 학술강연회를 열었다. 강연회에선 직권남용죄의 해석과 적용 범위 등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완규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직권남용죄는 정권교체 시 정치적 보복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며 “국정 운영 과정에서의 순수한 정책적 판단이 비판 대상이 됐을 때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공직자를 처벌하는 데 이용될 위험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직권’의 범위를 타인의 의사를 억압하는 강제력 있는 직무로 한정하고, 남용 행위도 사익 목적을 추구하는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대로 직권남용죄를 더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권남용죄는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공권력의 행사가 정의롭고 공정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라며 “공무원의 지위가 올라갈수록 직무 범위의 반경이 넓어지기 때문에 직무권한을 남용하는 것을 넘어 월권적 행위를 했을 때도 직권남용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직권남용죄는 외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범위가 넓고 형량이 높다. 독일은 폭행이나 협박이 수반돼야만 범죄가 성립한다. 일본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로 형량이 더 낮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