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들이 의료법 등에 막혀 제대로 쓰지 못했던 의료기기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르면 오는 7월부터 모든 한의원에서 한약을 짓기 전 혈액검사를 의무적으로 시행한다. 하반기에는 추나치료를 하는 한의원을 중심으로 휴대용 엑스레이도 쓴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반대해온 의사들과의 갈등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혁용 대한한의사협회장은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전국 한의사 2만5000명이 모두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혈액분석기기와 휴대용 엑스레이 사용 운동부터 벌일 계획이다. 첩약과 추나 치료의 효용성, 안전성 등을 검증하기 위해서다. 대책위원회도 꾸렸다. 위원장은 방대건 협회 수석부회장이 맡았다.

그동안 의사들은 "한약을 복용하면 간·신장에 부담을 준다"고 주장했다. 한의사들은 "한약을 먹은 뒤 간·신장 독성을 호소하는 환자는 이미 독한 양약을 먹어 기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이 때문에 일부 한의원은 2000만원 정도인 혈액분석기를 구입해 독성 검사를 했다. 한약 복용으로 생긴 부작용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협회는 이를 모든 한의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오는 21일 대전시한의사회를 시작으로 혈액검사 방법 설명회를 22차례 연다. 이후 한약 복용자 혈액 검사 데이터 10만 건을 모아 과학적으로 안전성을 입증할 방침이다. 최 회장은 "첩약이 건강보험 급여 항목에 들어갈 때 혈액검사까지 포함되도록 할 것"이라며 "그전에는 협회와 한의원이 검사 비용을 나눠 내 환자 부담을 줄이겠다"고 했다.

저출력(10㎃ 이하) 휴대용 엑스레이 사용도 늘린다. 현행 의료법상 엑스레이, 컴퓨터단층촬영(CT) 기기는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만 쓸 수 있다. 한의사를 제외한 의사, 치과의사, 물리학과·전자공학과 석사 등이다. 하지만 저출력 제품은 이런 제한 규정이 없다. 최 회장은 "추나치료를 하려면 영상의학과 전문의 등이 판독한 영상을 한의사가 다시 보고 척추 각도 등을 확인한다"며 "추나를 설계하고 효과를 입증하려면 엑스레이 사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의사들은 반발했다. 박종혁 의사협회 대변인은 "한의사 회원들에게 불법을 조장한 데다 임상 설계조차 하지 않은 검사를 하겠다고 선언해 의료윤리에 위배된다"며 "한의사들에게 혈액검사를 허용한 것은 어혈 등 한의학적 진료를 위한 것이지 간 수치인 트로포닌, 이뮤노글로블린 등을 보라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그는 "지금부터 엑스레이를 찍겠다는 것은 추나 건강보험 급여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라며 "추나 급여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등 직종에 따라 할 수 있는 의료행위는 의료법에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다. 이들의 업무 범위는 대법원 판례, 보건복지부 유권해석 등에 따라 구분된다. 의료행위를 두고 직종별 갈등이 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방안을 '규제 기요틴(단두대)' 과제로 채택했다. 이후 김명연 자유한국당 의원,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의료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의사 반대에 막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