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도로 시위대가 '점령'

주말에는 종일 교통마비
시민 외면 '시위광장'으로
< 시위 몸살 앓는 ‘광장’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주최로 지난 1일 열린 ‘2019 세계 노동절 대회’ 참석자들이 집회를 마치고 세종대로를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 시위 몸살 앓는 ‘광장’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주최로 지난 1일 열린 ‘2019 세계 노동절 대회’ 참석자들이 집회를 마치고 세종대로를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의 광장’인 서울 광화문광장에 일반 시민들의 발걸음이 뜸해지고 있다. 대신 각종 단체의 집회와 시위행진이 광장과 인근 도로를 점령했다. 하루 두 번꼴로 이어지는 거리 행진으로 세종대로 새문안로 사직로 등 광화문 주변 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이 되기 일쑤다. 주말엔 교통통제가 더해져 지하철이 아니면 접근하기조차 어렵다. 광화문광장이 ‘시위 광장’이 되면서 시민들이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위대에 빼앗긴 광장…'교통지옥' 된 광화문

10일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광화문 일대에서 신고된 거리 행진 건수는 2015년 26건에서 지난해 592건으로 3년 만에 22배 급증했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넉 달 새 신고된 거리 행진은 209건으로 작년(92건)보다 두 배 넘게 증가했다. 올 들어 하루에 두 번꼴로 광화문 일대 도로가 통제된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세월호 진상 규명,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 촛불 시위가 광화문에서 일어나 성과를 거둔 이후 광화문 일대 시위가 급증했다”며 “서울 도심 주요 광장을 장악해야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광화문으로 시위가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위대가 연일 도심 거리를 점거하다 보니 광화문 일대는 상습적인 교통 체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지난 1일 근로자의 날에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단체 회원 2만5000여 명이 서울광장부터 광화문광장까지 행진을 벌이면서 광화문삼거리와 세종대로사거리는 종일 교통이 마비됐다. 민주노총은 11일에도 대학로에서 광화문까지 거리 행진을 예고했다. 광화문 인근 건설회사에 다니는 주모씨(29)는 “택시들이 회사 근처로 가지 않으려고 해서 매번 애를 먹는다”며 “주말에 가족과 함께 나오는 건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촛불' 이후 점거시위 4~5배 급증
"주말 광화문 외출 꿈도 못 꾼다"


시위대에 빼앗긴 광장…'교통지옥' 된 광화문

지난달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선 교통 대란이 일어났다. 너비 4.2m 크기의 트랙터 5대가 세종문화회관 앞 세종대로를 점령해버렸기 때문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은 이날 4·27 판문점선언 1주년을 맞아 ‘통일트랙터 북한 전달 행사’를 열었다. 이들이 차로를 점거하고 미국대사관 앞으로 몰려가면서 이 일대 교통이 완전히 차단됐다. 다음날인 27일 광화문광장 일대는 또 ‘교통지옥’이 됐다. 이번엔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에 반대하며 집회를 열었다. 집회 참가자 5만여 명이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까지 행진했다. 세종문화회관 앞 도로가 모두 통제되면서 일반 차량은 물론 버스도 광화문광장에 접근할 수 없었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광화문광장에서 원칙적으로 집회·시위가 금지돼 있다. 하지만 시위자들은 광장 인근에 집회 신고를 내고 광장까지 점거한다. 특히 촛불시위가 성공한 이후 광화문 일대에서 열리는 집회는 그 전보다 4~5배나 급증했다. 잦은 집회로 광화문 일대에선 극심한 교통정체가 발생하고 있지만 서울시와 경찰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인근 주민도 “주말에 밖에 안 나가요”

광화문 일대에서 집회와 거리 행진이 늘어나면서 시민들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인근 주민은 물론 관광객들도 광화문광장을 피하고 있다. 지난 1일 근로자의 날엔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원들이 광화문광장 일대를 점거했다. 2만5000여 명의 민주노총 노조원들은 광화문 옆 세종대로를 통해 청와대까지 행진했다. 직장인 김현용 씨(31)는 “약속이 있어 택시를 급히 잡았는데 택시기사가 오늘은 광화문으로 가지 않는다고 거절해 약속에 늦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지난달 19일에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세종대로 사거리를 기습 점거하면서 차량들이 멈춰서는 일이 벌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3~4월에 광화문에서 1000명 이상이 참여한 집회가 여덟 차례 열렸고 그때마다 극심한 교통체증을 빚었다.

광화문 인근의 주민들은 매주 시민단체들의 행진에 시달리고 있다. 주민들의 거주 지역을 지나가면서 소음 피해를 끼치는 일이 잦아서다. 최근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국본), 태극기결사대운동본부,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운동본부 등은 토요일마다 대한문에서 광화문광장을 지나 청와대 앞을 지나는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직동에 사는 김희영 씨(45)는 “주말에 밖으로 나가는 걸 포기한 지 이미 2년이 넘었다”며 “확성기로 동네가 떠나갈 듯 구호를 외치거나 마구잡이로 아파트 단지 내에 들어오는 일도 잦다”고 하소연했다.

집회·행진 제한 규정도 무용지물

광화문광장에선 기자회견을 제외하면 집회·행진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서울시의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여가 및 문화활동으로만 광장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규정은 ‘문화제’라는 이름만 붙이면 쉽게 통과한다. 정치 집회라 하더라도 문화공연이 포함돼 있으면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4일에는 세월호 유족 모임인 4·16연대가 ‘촛불 문화제’를 열고 자유한국당 해산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광장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서울시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광화문광장과 붙어 있는 세종대로와 주변 인도는 종로경찰서 관할이다. 경찰에 미리 신고만 하면 집회를 열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도에서 집회 신고를 하고 광장을 점령하는 일이 허다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위대가 광장에 난입해도 실질적으로 막을 수단이 없다”고 했다.

경찰도 광화문광장 인근의 집회로 골머리를 앓는다. 대부분의 집회 참가자가 차로를 점거하는 도로 행진을 요구해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관할 경찰서장이 대통령령으로 정한 주요 도로에서 원활한 교통을 위해 집회·행진을 금지할 수 있다. 세종대로 등 광화문광장 일대도 주요 도로에 포함된다. 그러나 사문화된 규정이 됐다. 실제 행진을 막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집회 주최자들은 광화문광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한다. 서울 종로경찰서 민원인 대기실은 오전 7시부터 집회 신고인들로 북적인다. 경찰 관계자는 “시위자들이 지역 문제도 광화문에서 시위해야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광화문 시위는 앞으로도 줄어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배웅규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광화문광장이 일부 집단의 시위·집회 장소로만 쓰이도록 방치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정부와 서울시가 많은 시민이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배태웅/김순신 기자 btu104@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