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다툼' 인식 우려 공식대응 자제…일선 경찰들은 반박 자료 만들어 배포도
검찰 '수사권조정 때리기'에 경찰 무대응전략…속으론 부글부글
검·경 수사권조정과 관련 검찰이 전방위적인 여론전에 나서자 경찰의 고심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경찰은 검찰의 여론전에 맞대응해봐야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 공식대응을 자제해왔지만, 잇단 수사권조정 법안 '때리기'에 경찰 내부 여론은 부글부글 끓는 모양새다.

수사권조정 법안이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자 먼저 공세의 포문을 연 곳은 검찰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 1일 대검찰청 대변인실을 통해 수사권조정 법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경찰권의 비대화가 우려스럽고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는 게 문 총장의 논리다.

이어 일선 검사들까지 방송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수사권조정 법안의 부작용에 대해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경찰은 철저히 '로키'(low key·절제된 대응)로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 2일 설명자료를 내고 수사권조정 법안은 경찰 수사에 대한 검사의 통제방안을 강화했다고 반박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반박' 보다는 '설명'에 가깝다는 게 경찰 측 입장이다.

자칫 맞대응에 나섰다가 수사권조정이 권력기관 간 '밥그릇 다툼'으로 비칠 경우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동안 수사권조정을 통한 검찰 개혁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개혁이 성공하지 못한 데는 '밥그릇 다툼'이란 프레임에 갇혀 국민 동의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경찰의 인식이다.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은 10일 오전 출입기자단을 상대로 수사권조정의 쟁점에 대해 설명자리를 만들려다가 일정을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

당초 법안에 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경찰의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려 했지만, 이 역시 공식 맞대응이나 양 기관 갈등으로 비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경찰청은 여론전보다는 내부 단속에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앞서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 4일 직원들에게 발송한 '전국 경찰 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수사권조정과 관련 "경찰의 역사적 전환점이 될 선진 형사사법 체계로의 변화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경찰이 중대한 시험대에 오른 만큼 민주·인권·민생 경찰로 도약하기 위한 개혁과 쇄신에 더욱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며 조직의 내부 단속과 개혁을 주문했다.

경찰 내부 통신망에도 수뇌부에 침착한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경찰관은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검찰의 노림수는) 검찰 권력의 견제가 경찰과 검찰 간 권력 다툼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라며 검찰의 '프레임 걸기'에 말려들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할 말은 해야 하지 않느냐'는 여론도 비등하고 있다.

특히 일선 경찰들 사이에서는 검찰이 '민주주의'와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명분으로 삼는 데 대한 반발이 심하다.

수사권조정은 검찰의 과도한 권력을 제한해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고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게 경찰의 논리다.

특히 검찰이 '고소사건 이렇게 바뀝니다'는 제목으로 수사권조정이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Q&A 형식으로 제작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배포하자 이에 발끈한 경찰들은 자체적으로 반박 자료를 만들어 공유하고 있다.

한 경찰관은 "검찰이 언론 등을 통해 수사권조정 법안의 내용의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다"며 "국민들에게 잘못된 내용을 전달하고 수사권 갈등을 부추기는 행동은 용납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경찰 내부 통신망에도 "싸워야 할 때는 싸워야 한다", "전략적으로 우리도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내주 기자간담회를 열고 수사권조정 법안에 대해 구체적 입장을 밝히기로 한 만큼 경찰의 대응 전략이 이를 계기로 바뀔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