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좌석제 탓에 늦으면
팀장 앞자리서 '눈칫밥'

PC 온·오프제로 '눈치 보는 야근'
안 해도 돼
[김과장 & 이대리] 스마트오피스의 빛과 그림자

지난해 7월 근로시간 단축제도(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된 뒤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사무실 내 앉고 싶은 자리에서 근무하는 ‘스마트오피스’, 마음대로 근무 시간을 조정하는 ‘자율출퇴근제’ 등이 확산하면서 직장 내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미국 구글처럼 업무 방식이 혁신적으로 변하고, 자유로운 출퇴근으로 삶의 질이 나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상하 관계가 분명한 한국 특유의 직장문화 속에서 아직 낯설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달라진 직장 풍속에 적응해가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칸막이 책상이 그리울 때도

엔터테인먼트회사에 다니는 김 대리는 지난해 말 도입된 스마트오피스에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매일 사무실 좌석이 바뀌는 자율좌석제 때문이다. 직원들 사이에선 팀장과 멀리 떨어진 창가 자리에 앉기 위한 경쟁이 매일 펼쳐진다. 조금이라도 출근이 늦어진 날엔 화장실 앞이나 팀장 앞자리에 앉아야 한다. 김 대리는 “오전 10시인 출근 시간에 맞춰 오면 거의 출입구나 화장실 쪽에 자리를 잡게 돼 업무 시간 내내 신경이 쓰인다”며 “팀장 가까이 앉은 날은 눈치를 보다 두통이 생길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출근 시간 한 시간 전에 미리 사무실에 나와 좋은 자리를 ‘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비슷한 시간에 출근한 경우엔 물밑 신경전이 벌어질 때도 종종 있다. 김 대리는 “매일 사무실 자리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크다”며 “스마트오피스를 도입한다고 다 실리콘밸리식 혁신이 이뤄지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회사의 창의적(?) 자리 배치로 마음고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파주출판단지에서 근무하는 심 대리는 최근 사무실 구조가 바뀐 탓에 마음이 불편하다. 사무실 책상 네 개를 서로 90도로 틀어 바람개비 모양으로 변경하면서다. 애초 의도대로 창의력을 높이기는커녕 칸막이가 사라지면서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다른 사람의 모니터가 보여 집중하기 어려웠다. 심 대리는 “노트북에 보안필름을 붙이고 책상 옆에 책을 잔뜩 쌓아놓게 된다”며 “스마트오피스 도입으로 되레 대화는 줄고 카카오톡 등 메시지만 더 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예전의 칸막이 책상이 그립다”고도 했다.

스마트오피스를 반기는 직장인도 꽤 있다. 정보기술(IT)회사에 다니는 윤 과장은 “일찍 출근해 좋은 자리에 앉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며 “같이 앉기 싫은 상사나 동료를 피해 앉을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PC 자동 온·오프제의 명과 암

스스로 일하는 시간을 정하는 자율출퇴근제에 대한 반응은 좋은 편이다. 반도체 장비 관련 회사에 다니는 오 대리는 출근 시간을 한 시간 당겼다. 대신 퇴근을 남보다 한 시간 일찍 한다. 붐비는 출퇴근 시간을 피해 오가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저녁 시간 아이를 챙길 수 있게 됐다. 오 대리는 “일찍 퇴근하니 집 근처 어린이집에 맡긴 아이들을 직접 데려올 수 있게 됐다”며 “팀장도 퇴근 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빨리 사무실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정해진 시간에만 일하도록 하는 ‘PC 자동 온·오프제’도 책임감과 만족감을 높이는 제도로 여겨지고 있다. 유통 대기업에 다니는 최모 과장은 오전 9시에 업무용 컴퓨터를 켜면 오후 5시에 강제로 꺼지는 제도가 도입된 뒤 행복감이 높아졌다. 최 과장은 “일찍 와도 어차피 업무를 볼 수 없으니 다들 떳떳하게 9시에 출근한다”며 “과거에는 일을 끝내도 팀장이 안 가 자리를 못 떴지만 이젠 그럴 일이 없다”고 말했다. “오후 5시까지 모든 일을 끝내야 하는 부담감이 적지 않지만,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진 건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강제 PC 온·오프로 되레 더 고생하는 직장인도 적지 않다. 중견 주류업체 대외협력부서에서 일하는 고 차장은 “오후 6시면 회사가 업무용 PC를 꺼버리는 탓에 공식적으론 일할 수 없지만, 업무가 끝난 게 아니다”며 “휴대폰과 카카오톡 등으로 지시가 쏟아지면 퇴근 시간 후에도 근처 카페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홍보대행사에 다니는 이 대리는 “차라리 회사에서 일을 다 처리해놓고 퇴근하는 게 속 편하다”며 “일률적인 제도보다 업무와 직군에 따른 제도 적용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디서든 일만 하면 OK

꼭 사무실에 나오지 않아도 되는 회사가 늘면서 집이나 근처 카페에서 일하는 직장인도 많아졌다. 전자상거래회사에서 일하는 유 팀장은 사무실에서 집중이 잘 안 되는 날은 근처 직원용 카페로 옮긴다. 유선망으로만 접속할 수 있던 인트라넷을 무선망에서도 접속할 수 있어 가능하다. 전산실에서 허용만 하면 집에서도 일할 수 있다.

IT회사에서 일하는 박 책임연구원은 이직 후 1년에 휴가를 한 달 정도 간다. 공식적으로 쓸 수 있는 휴가는 한 달인데도 사실상 두 달 휴가가 가능하다. 어디에서건 일만 하면 출근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올초에는 아내와 다섯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크로아티아로 여행을 갔다. 박 책임연구원은 “외국에 나가서도 시간을 조절해 일할 수 있어 좋다”며 “다만 책임지고 성과를 내야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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