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대학가는 졸업식과 입학식으로 분주하다. 의례적인 입학식을 폐지한 대학도 있고, 졸업생이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아 행사의 실효성을 고민하는 곳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식은 학교나 학생에게 무척 특별한 통과 의례가 됐다. 식장인 극장 무대에는 졸업생 전원이 앉아 있다. 객석에는 학부모와 교수진이 가득하다. 무대 위 졸업생이 졸업식의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공간적 의미다. 졸업생 한명 한명 이름을 모두 호명하며, 관객은 박수로 축하한다. 졸업생 수가 적은 8월의 하계 졸업식은 아예 전원에게 학위증을 수여한다. 재학생이 준비한 축하 공연은 그 자체로 완벽한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입학식도 비슷하게 한 편의 공연으로 꾸며지니, 졸업식과 입학식을 담당한 단과대학에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더 큰 부담은 바로 총장인 필자에게 주어진다. 행사에 빠질 수 없는 총장 연설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대학에서 총장 연설문은 홍보팀에서 작성한다. 우리 학교도 직원들이 준비해왔다. 그러나 적어도 이 두 행사의 연설문은 직접 쓰리라 결심했고, 현재까지는 지키고 있다. 대개 입학식사는 ‘치열한 합격을 축하하며, 큰 배움터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정진하라’ 정도로, 졸업식사는 ‘졸업은 새로운 출발이며, 사회의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성공하라’는 것이 요지다.문제는 이런 판박이 연설을 넘어 좀 더 참신한 주제를 찾아야 하고, 감동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여름과 겨울 졸업식, 그리고 입학식, 1년에 세 번의 연설문을 써야 한다.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으니 전보다 나은 글을 써야 한다. 5년이 지나니 이제 소재도 바닥나고, 반복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올해는 마침 평창동계올림픽 중이어서 인기 절정의 컬링을 소재로 삼아 겨우 넘길 수 있었다. 컬링 여자 대표팀에 승리 비결을 묻자 상대 순위를 의식하지 않고 곧 던질 샷 하나에만 집중했다고 답했다. 이를 응용해 “예술이란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고 차가운 얼음판같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길 바란다”고 쓸 수 있었다. 횟수가 쌓여가면서 머리에 든 소재는 바닥에 가까워지니 연설문 부담으로 해마다 2월의 머리 한구석은 하얗게 마비될 지경이다. 그래도 신입생과 졸업생에게 기억에 남을 말 한마디는 꼭 전하고 싶다. 그것이 총장으로서, 선학으로서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선물이라 생각한다. 아, 또 며칠 앞으로 다가온 입학식에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정말 오랜만에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다시 갔다. 27년 전 이 도시를 한 해에 세 번이나 방문했다. 모두 해서 한 달가량 머물렀다. 샅샅이 살펴 이 도시를 정복했다고 믿었다. 베네치아는 세계 어느 곳보다 매력적이었지만, 관광객이 너무 많아 주민의 일상적 삶을 만나기 어렵다는 흠이 있었다. 이번 여행은 관광객이 가장 적은 겨울 비수기를 택했다. 그러나 세계 10대 축제 중 하나라는 ‘가면 카니발’ 기간과 겹쳤다. 그 보름 기간에 300만 명이 방문한다니 여행 의도는 완전히 빗나갔다.베네치아는 물의 도시다. 모두 118개 섬과 150개 운하로 이뤄졌다.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다 남은 물길이 운하로, 이 도시의 유일한 교통로다. 베네치아는 상업과 경제 도시다. 십자군 전쟁 때 동서를 잇는 중계 무역으로 그야말로 떼돈을 벌어 유럽의 금융 중심지가 됐다. 영국의 시골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을 쓸 정도였다. 베네치아는 예술의 도시다. 티치아노 베첼리오와 같은 베네치아 화가들은 피렌체와 함께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현재도 베니스 비엔날레와 영화제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 경연장이다.베네치아 하면 떠오르는 책이 있다. 이탈리아 거장 소설가인 이탈로 칼비노가 쓴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다. 소설 내용은 단순하다. 마르코 폴로가 그가 본 여러 도시를 쿠빌라이 칸에게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 얇은 소설은 총 11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기억, 욕망, 기호 등 도시에 부여한 특성이 그 소제목이다. 총 55개의 상상 속 도시를 강렬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모든 도시의 설명은 결국 하나의 도시를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 바로 마르코 폴로의 고향인 베네치아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기억, 십자군과 카사노바의 욕망, 건물과 다리의 섬세함, 수많은 인물과 장소의 이름들, 그리고 기호들…. 역사가 깊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도시일수록 한 도시 안에 수많은 다른 도시가 숨어 있다. 이들이 칼비노가 말한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고, 이를 많이 가진 도시가 곧 위대한 도시다.역기능도 있다. 상주 인구 5만5000명에 불과한 이곳에 한 해 관광객 3000만 명이 몰려온다. CNN이 ‘가보지 않아도 될 12개 도시’에 꼽을 정도로 관광 공해를 앓고 있다. 무엇을 보러 올까? 처음엔 운하, 성당, 광장의 ‘보이는 도시’를 보러 온다. 그러나 대다수는 이 도시의 기억과 기호와 욕망과 섬세함과 숨겨진 것을 찾으러 온다. 나 역시 이번엔 ‘카니발 베네치아’라는 보이지 않는 도시에 매료됐다. 우리 도시는 보이지 않는 것을 얼마나 갖고 있을까?
“왜 이리 추운 거야?” 올겨울 가장 많이 하고 듣는 말이다. ‘서베리아(서울 시베리아)’는 모스크바보다 더 춥고, 남국 제주는 폭설과 한파로 온 섬이 마비됐다. 기상 전문가들은 북극을 감싸는 제트 기류의 흐름이 약화돼 북극의 차가운 대기가 한반도까지 흘러 내려와 극한 추위가 왔다고 설명한다. 지구의 긴 역사를 보면 여러 차례 빙하기가 있었다.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의 따뜻한 기간을 간빙기라 하는데, 현재의 생물이 출현하고 인류 문명이 발전한 시기는 제4 간빙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의 지구는 신기하게도 그 표면 온도와 대기가 생물 생존에 알맞도록 평형 상태를 유지해오고 있다. 최근의 이상기후는 환경오염으로 인해 그 평형 상태가 깨진 결과다.1970년대에 지구대기학자인 제임스 러브록은 ‘가이아 이론’을 발표했다. 이 이론은 한마디로 지구는 살아있는 거대한 생명체라는 가설이다. 수십만 년 동안 지구는 마치 상온동물과 같이, 스스로 자신의 환경을 평형 상태로 조절해왔다. 예를 들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0.03% 정도로 꾸준히 유지했고, 평균 표면 온도의 변화를 2도 미만에서 조절했다. 이런 현상은 지구 생명체의 자체 정화력과 유지 복원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홍대용은 그의 저서 《의산문답》에서 이렇게 설파했다. “지구는 활물(살아있는 생물)이다. 흙은 지구의 살이고, 물은 피며, 비와 이슬은 눈물과 땀이다. 풀과 나무는 지구의 모발이고, 짐승과 사람은 이나 벼룩이다.” 놀랍게도 가이아 이론과 비슷한 인식체계를 보여줬다.가이아 이론이나 지구활물설의 관점에서 보면 거대 도시의 발달은 곧 피부병을 유발한 것이며, 대기 공해와 오염은 기관지염을 옮긴 것이다. 지구는 피부병을 치료하려 지진을 일으키고 화산을 폭발시키며, 기관지염을 치유하려 폭염과 혹한을 일으킨다. 물론 지구활물설은 철학적 인식에 불과하고, 가이아 이론은 여러 면에서 과학적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인류가 일으킨 환경 재앙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인식체계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의 극한 추위가 평창동계올림픽을 방해할까 노심초사했다. 다행히도 개막식 날 하루만은 날씨가 풀려 멋진 개막식을 치를 수 있었다. 바로 다음날부터 강풍과 혹한이 시작되니 종교인들은 신의 섭리라고 믿을 만한 일이다. 정말 지구는 살아있는, 그것도 선량한 생명체가 아닐까? 모체인 지구의 건강 회복을 위해 기생충에 불과한 인간들의 이기적 욕망을 절제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