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오는 26일 임기가 끝나는 정성진 양형위원장 후임으로 김영란 전 대법관(사진)을 임명했다. 양형위는 형사재판에서 판사가 결정하는 형량의 구체적 기준과 한계를 정하는 기구다. 임기는 2년. 김 신임 위원장은 2010년 퇴임한 뒤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2011~2012년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냈다.
형사재판에서 판사가 결정하는 형량의 구체적 기준과 한계를 설정하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새 위원장에 김영란 전 대법관이 임명됐다.대법원은 오는 26일 임기가 끝나는 정성진 양형위원장 후임으로 김 전 대법관을 임명했다고 22일 밝혔다.김 신임 위원장 임기는 2년이며 27일부터 임기가 시작된다.김 전 대법관은 2010년 8월 퇴임한 뒤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2011∼2012년 제3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이 시기에 공직 부패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추진했다.지난해에는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2022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양형위원회는 위원장과 법관 위원 4명, 법무부 장관이 추천하는 검사 위원 2명,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추천하는 변호사 위원 2명, 일반 위원 2명 등으로 구성된다./연합뉴스
김영란 전 대법관이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석좌교수직을 사임했다.26일 서강대 등에 따르면 김 전 대법관은 올해 1월 서강대 석좌교수직에서 물러났다.김 전 대법관은 2010년 8월 대법관 임기를 마친 뒤 그해 서강대 석좌교수에 임용돼 대학 강단에 섰다.김 전 대법관은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이제 그만둘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2017년부터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가졌고 학교에도 알렸다"고 말했다.그는 "앞으로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라며 "책을 써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김 전 대법관은 대법관 임기(6년)를 마친 당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는 법을 찾겠다고 밝혀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김 전 대법관은 이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지난해에는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연합뉴스
사법연수원 11기는 현직 법조계 인력 구성 피라미드의 상층에 있는 기수다. 11기 이후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소수 정예인 11기는 ‘명문 기수’로 손꼽힌다. 출셋길도 후배 기수들에 비해 탄탄했다. 그러나 위험도 많았다. 소위 ‘잘나가는’ 법조인이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로 곤욕을 치르는 법조인 중에 11기가 적지 않다.대법관 6인의 갈라진 운명11기는 사법시험 20~21회(1978~1979년 합격) 합격자들이다. 21회 120명이었던 사시 합격자 수는 22회 142명, 23회에는 316명으로 늘었다. 이후 15년간 사시 합격자는 300명대를 꾸준히 유지했다. 11기에는 고영한·김영란·김지형·박상옥·이인복 등 대법관만 여섯 명을 배출했다. 서기석 헌법재판관도 11기다.이 중 고영한·이인복 전 대법관은 존경받는 대법관에서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르는 극단을 오갔다. 모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고 전 대법관은 대법관 출신 최초로 검찰로부터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 전 대법관은 검찰 수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김영란법’으로 유명한 김영란 전 대법관은 비교적 탄탄대로를 걸었다. 김 전 대법관은 2004년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일하던 중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 심의에 동의하란 연락을 받았다. 김 전 대법관은 당시 대법관 중 가장 기수가 낮은 김용담 대법관(1기)보다도 10기수나 후배였다. 불가능하다고 느꼈던 김 전 대법관은 부동의서를 냈다가 법원행정처 설득에 동의로 마음을 바꿨다.파격 인사에 따라 김 전 대법관은 대법관이 됐다. 한 해 전 대법관 제청으로 사법파동을 겪었던 최종영 대법원장이 ‘48세의 첫 여성 대법관’을 사법부 신뢰회복의 발판으로 삼았던 영향이 컸다. 대법관 재임 중에는 김 전 대법관은 진보 성향의 대법관을 일컫는 ‘독수리 오형제’ 중 한 명으로 꼽혔다.‘독수리 오형제’는 박시환·김영란·전수안·이홍훈·김지형 대법관을 일컫는 별명이다. 이용훈 대법원장 재임 시절인 2004년부터 2006년 사이에 지명된 5인이다. ‘서울대-남성’이라는 공식을 깨고 지명됐다. 대법관 시절에는 소수의견이나 별개·보충의견을 통해 진보적인 견해를 많이 내놓았다.김지형 전 대법관도 11기다.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인 김 전 대법관은 노동법 분야 권위자로 손꼽힌다. 《노동법 해설》, 《근로기준법 해설》 등의 책을 쓰기도 했다. 비서울대라는 이유로 법원 내 비주류로 평가받던 그였다. 하지만 탈(脫)서울대 흐름이 생기면서 대법관으로 오르는 데는 지장이 되지 않았다.최근엔 삼성백혈병 분쟁조정위원장을 맡아 11년간의 분쟁을 마무리 지어 법조계 귀감이 됐다. 동기이자 다른 대법관 출신들이 검찰 수사를 받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문재인 정부와 가장 코드가 잘 맞는 로펌의 대표라는 평가도 있다.로펌에서도 종횡무진11기는 재야에서도 맹활약 중이다. 대형 로펌의 굵직한 대표급 자리에 11기가 빠지지 않는다. 문성우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는 1984년 검사로 첫발을 디딘 이후 검찰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법무부 차관과 법무부 검찰국장 등 검사 엘리트 코스를 밟고 대검 차장검사까지 지냈다. 같은 법무법인의 11기 하종선 변호사는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을 지낸 기업통이다. 그는 최근 BMW 차량 화재 사고와 관련해 소비자들을 대리한 소송을 하고 있다.세종에서는 윤재윤 전 대표변호사가 11기다. 윤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에서 건설전문재판부 재판장을 최장기간 지냈다. 건설분쟁실무상 필독서인 《건설분쟁관계법》을 저술하는 등 건설분쟁소송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김준규 37대 검찰총장은 화우에서 대표변호사를 지냈다. 김 변호사는 화우의 형사 업무를 총괄하며 기업의 준법경영을 위한 부패방지 컨설팅에도 앞장서고 있다. 동인에서 형사팀의 주축 역할을 맡고 있는 신상규 전 광주고검장도 11기의 중심 인물로 꼽힌다.학계에서는 석광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국제사법의 대가로 명성이 높다. 11기 중에서는 학문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낸 인물로 평가받는다. 석 교수는 최근까지도 활발한 연구활동으로 지난 3일 서울대 학술연구교육상을 받았다.정치계에는 이인제 전 국회의원이 11기 출신이다. 판사 출신인 이 전 의원은 6선 국회의원으로 대통령 선거에만 두 번 출마했다. 정치권에서 끝까지 살아남는다며 죽지 않는 새, 피닉스와 이인제의 합성어인 ‘피닉제’가 별명처럼 붙기도 했다. 검사장 출신인 경대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차장검사와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장을 지냈다.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