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논리 끼어들 여지 없는 의료
“대한민국에 의료서비스는 있지만 의료서비스산업은 없다. 의료서비스산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육성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대통령 직속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가 내린 결론이다. 13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그대로다. 서비스산업 육성 목소리가 높지만 여전히 의료는 뒷전이다. 의료 영리화 논쟁에 막혀 규제개혁 안건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은 경기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를 찾아 연구중심병원들이 기술지주 자회사(산병협력단)를 세울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했다. 9개월이 지났지만 산병협력단 개설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학병원들이 자회사를 세우도록 허용하면 보건의료 시스템이 무너질 것이라는 시민단체들의 반대에 막혀서다.

보건복지부는 국내 대형 대학병원의 임상 아이디어를 산업화하기 위해 서울대병원 등을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했다. 대형 대학병원이 연구분야에서 수익을 내면 환자 쏠림 문제 등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조차 창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병원이 직접 자회사를 세우고 이 회사에서 나온 수익을 배당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규제를 풀려는 정부 방침에 시민단체들은 ‘의료 민영화’라며 맞서고 있다.

의료기관의 투자 배당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의료법에 발목 잡힌 것은 대형 대학병원뿐이 아니다. 중소병원도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의료법에 따라 의료기관은 은행돈 외에는 외부 투자를 받을 수 없다. 의료법인의 인수합병(M&A)도 금지된다. 의료법인 운영자가 경영에서 손을 떼는 방법은 도산이나 법정관리뿐이다. 망해야만 팔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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