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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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도 풀수 있는 문제로 우리나라 대졸자들에게 멘붕(멘탈 붕괴)이 왔다니…”

지난 14일 치러진 삼성직무적성검사(GSAT)의 ‘역대급 GSAT 난도에 수험생 비명’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또 다른 댓글은 “책을 조금만 읽어도 알 수 있는 어휘인데 정말 요즘 대학생들은 책을 안 읽구나”며 현실을 꼬집는 글도 달렸다.

기사에서 언급 된 단어는 ‘젠체하다(잘난 체하다)’ ‘칠칠하다(일 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지다)’ ‘서슴다(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다)’ 등이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단어는 아니다. 책이나 신문만 꾸준히 읽었으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어휘다.

수험생 대부분도 온라인 취업 커뮤니티에 ‘기억에 남는 문제’라며 난이도보단 이색적인 문제로 꼽았다. 현장에서 만나본 수험생들도 하나같이 “어휘문제보다는 언어영역의 긴 지문속에 숨겨진 문맥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반응했다.

댓글에는 직무중심 채용의 결과물이란 분석도 나왔다. 한 독자는 “대기업들이 직무중심 채용을 하다보니 대학생들도 학업에 필요한 공부만 하고 독서를 안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제조업이 중심이다. 그러다보니 채용은 이공계 기술직을 위주로 뽑는다. 주요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때 ‘2대8’의 비율로 이공계생을 더 많이 뽑는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부터 삼성·현대자동차·SK그룹은 입사시험에서 상식·역사과목을 아예 폐지했다. 이공계생들의 부담을 덜 주기 위해서란게 이유였다.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선발한다는 명목하에 기업들은 이공계생 채용때 지원자의 전공학점을 중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최근 대기업의 채용 트렌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한 대학 취업센터장은 “4차 산업혁명은 모든 산업의 융합을 뜻하는데 이런 채용방식으로는 ‘한국의 스티브 잡스’는 영영 안나올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최근 중앙대 다빈치인재개발원은 꽤 흥미로운 조사 하나를 했다. ‘최근 5년간 중앙도서관에서 인문학 서적을 많이 빌린 이공계생들의 취업률’이다. 이 조사를 한 박철균 원장은 “결론은 인문학 책을 많이 읽은 이공계생이나 책을 안 빌린 이공계생간 취업률에 차이가 없었다”며 “기업들은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의 인문학적 상상력보다는 이공계 지식만을 보고 뽑았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 아마존에서의 12년 직장생활을 담은 책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를 쓴 박정준씨는 “입사때 면접관 다섯명이서 한시간씩 돌아가며 자신의 모든 인생을 정교히 해부하듯 인터뷰를 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전공지식만 평가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우리 코 앞에 펼져지고 있는데 한국 기업들은 다시 20세기 채용방식으로 회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