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뉴질랜드도 일부만 채택했는데…ILO 핵심협약 비준 안했다고 '노동탄압국'?
국제노동기구(ILO)는 1919년 설립 이후 근로자의 권익과 근로 조건 보호에 앞장서왔다. 그 결과물이 189개 조항으로 이뤄진 ILO 협약이다. 협약은 핵심·거버넌스·일반 협약으로 구분되며 핵심협약에 핵심 가치가 담겨 있다. 거버넌스 협약은 정부 정책 및 행정 절차를 다루고, 일반 협약은 일반적 노동 기준에 관한 것이다.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 강제근로 금지, 아동노동 금지, 균등 처우에 관한 8개 협약이다. 한국은 189개 협약 중 29개(핵심협약 8개 중 4개 포함)를 비준했다.

ILO 협약으로 대표되는 국제노동기준은 한·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에도 반영돼 있다. 협정 당사국은 국제노동기준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이 그것이다. 열악한 노동기준이 협상 당사국 간 공정경쟁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강제성은 없더라도 중요성이 부각되는 이유며 노동계, 학계, 시민사회단체 등이 ‘ILO 협약 기본정신 존중’을 외치는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ILO 핵심협약 위반이 심각한 국제 문제 및 통상 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반론이 만만찮다. 먼저 8개 핵심협약 비준이 강제적인가의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미국은 6개, 일본과 뉴질랜드는 2개, 멕시코와 호주는 1개를 비준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15세 미만의 아동노동금지협약도 비준하지 않고 있다. 농업지역에서 부모 돕기 및 이웃집 마당 잔디깎이 아르바이트를 금지할 수 없어서라는 게 미 노동법학계 설명이다.

ILO 협약을 비준하지 않으면 통상 분쟁이 생길 것이라는 시각도 과장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와 노동계는 최근 방한해 협약비준의 필요성을 강조한 EU 집행위원 일행을 거론하며 협약 미 비준에 따른 한·EU 통상 분쟁을 경고했다. 그러나 한·EU FTA 문안에는 ‘비준 의무’가 아니라 ‘비준노력 의무’가 규정돼 있을 뿐이다. 세실리아 말스트롬 EU 집행위원이 지난 9일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만나 국가별 상황에 맞춰 비준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하며 ‘노력’을 주문한 배경이다.

ILO는 기본적으로 3자 기구다. 의결기구인 총회는 일반적인 국제기구와 달리 회원국의 정부 대표 2인, 노동계 1인, 경영계 1인으로 구성된다. 당사자인 노사가 대화와 협의로 노동기준과 규범을 세우라는 취지를 담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가 이번에 노동계 주장에 치우친 공익위원안을 내놓은 것은 ILO 정신과 부합하지 않는다. 노사 간 의견 차와 여야 간 입장 차가 큰 사안에 대해 경사노위가 일방적으로 논의를 밀어붙인 것은 오는 6월 문재인 대통령의 ILO 100주년 총회 참석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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