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자기결정권 과도한 침해"…재판관 7대 2 의견 헌법불합치 결정'전면허용' 방지 위해 헌법불합치 결정…내년 12월31일까지 법개정 해야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전면 금지하면서 이를 위반했을 때 처벌하도록 한 현행법 조항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이에 따라 1953년 제정된 낙태죄 규정을 66년 만에 손질하는 작업이 불가피해졌다.임신 후 일정 기간 내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으로 법 개정이 이뤄질 전망이다.헌법재판소는 11일 산부인과 의사 A씨가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자기낙태죄'로 불리는 형법 269조는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는 내용이다.270조는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이다.자기낙태죄에 종속돼 처벌되는 범죄다.동의낙태죄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A씨는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 규정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2017년 2월 헌법소원을 냈다.헌재 심판에서는 태아의 발달단계나 독자적 생존능력과 무관하게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지가 쟁점이 됐다.이에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이어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밝혔다.반면 조용호·이종석 헌법재판관은 "낙태죄 규정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어느 정도 제한되지만 그 제한의 정도가 낙태죄 규정을 통해 달성하려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중대한 공익에 비해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며 합헌 의견을 냈다.하지만 합헌 결정이 나올 정족수 4명에 미치지 못했다.헌재는 다만 낙태죄 규정을 곧바로 폐지해 낙태를 전면 허용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라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죄 관련 법조항을 개정하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이 기한까지 법이 개정되지 않을 경우 낙태죄 규정은 전면 폐지된다.이와 관련, 위헌 의견을 낸 7명의 재판관 중 이석태·이은애·김기영 헌법재판관은 단순위헌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2020년 12월 31일까지 법 개정 기간을 둘 필요 없이 곧바로 낙태죄 규정을 폐지해도 된다는 견해다.단순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3명은 "낙태죄 규정이 곧바로 폐기되더라도 극심한 법적 혼란이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이런 견해 역시 다수의견을 형성하지 못해 채택되지는 않고, 2020년 말까지 법 개정을 하라는 쪽으로 결정이 내려졌다.헌재가 법 개정 기한을 제시했지만, 낙태죄 조항 자체에는 사실상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이 사건의 직접 당사자인 A씨는 물론 낙태죄로 기소돼 재판 중인 피고인들에게 공소기각에 따른 무죄가 선고될 것으로 예상된다.또 2012년 헌재의 합헌 결정 이후 기소돼 처벌된 사람들의 재심청구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다만 법원 일각에서는 헌법불합치 결정은 단순 위헌 결정과 달리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어 낙태죄 형사재판과 관련해 추가 논란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연합뉴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헌법재판소, 낙태죄 위헌 결정해야"개신교 단체·시민단체, 오후 '낙태죄 폐지 반대' 기자회견낙태를 처벌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나는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는 11일 헌재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잇따라 열렸다.한국여성단체연합, 민주노총, 인권운동사랑방 등 23개 단체가 모여 만든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이날 오전 9시부터 릴레이 기자회견을 열었다.가장 먼저 열린 청년 학생 기자회견에서 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원회 황강한 씨는 "여성은 스스로 신체와 삶에 대한 결정권을 능동적으로 행사할 능력이 있다"며 "낙태죄 위헌 선고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이들은 "행복추구권 침해하는 낙태죄를 폐지하라"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 보장하라" "약물적 임신중지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쳤다.이어 열린 종교계 기자회견에서는 기독여민회·성공회 길찾는교회·천주교성폭력상담소 등 기독교 계열 종교단체들이 성명을 발표했다.이들은 "여성은 아이를 낳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라며 "교회는 오랜 시간 외면했던 여성의 고통을 진심으로 경청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밝혔다.이어 "지금까지 필요에 따라 때로는 출산을 억제하고 때로는 장려하며 여성의 몸을 '공공재' 취급하던 입장을 반성해야 한다"며 "순응적 인간상을 강요하며 여성을 소유물처럼 대해 온 종교적 관성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강조했다.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페미니즘모임 등 청소년 단체 관계자들은 미비한 학교 성교육과 청소년의 임신중절 권리에 초점을 맞췄다.청소년인권행동 소속 '라일락' 씨는 자신의 청소년기 낙태 경험을 이야기하며 "청소년 임신중절에 보호자의 동의를 강제하는 것은 청소년의 건강을 중대하게 침해할 수 있다"며 "임신중절을 선택할 때 필요한 정보를 국가와 전문가로부터 받고 당사자와 병원, 낙태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한편, 릴레이 기자회견이 열린 헌재 정문 앞에는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시민 10명가량도 시위를 벌였다.이들은 '생명을 죽일 권리 누구에게 있습니까', '낙태도 살인이다' 등의 피켓을 들고 낙태죄 존치를 주장했다.개신교 단체와 시민사회단체 79개로 구성된 '낙태죄폐지반대전국민연합'은 이날 오후 1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를 존치해야 한다고 촉구할 계획이다.이들은 전날 배포한 성명서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의 존중이라는 우리 헌법 정신에 근거해볼 때 낙태죄는 계속 존치돼야 한다"며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다음 세대에 어떤 가치와 도덕적 유산을 남겨줘야 할지 깊이 생각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이어 "실제 낙태 시술을 받은 여성의 신체적, 정서적 고통이 알려진다면 낙태 시술에 가장 반대해야 할 사람들은 여성들이 될 것"이라며 "낙태죄는 태아의 생명권 문제뿐 아니라 여성 인권 보호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존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헌법재판소는 이날 오후 2시 헌재청사 1층 대심판정에서 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에 대해 산부인과 의사 A씨가 낸 헌법소원 사건을 선고한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