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백년대계' 짤 기구 首長으로

"사립유치원·자사고·대학 개혁…
'사학의 미래' 어려운 숙제 풀어야죠"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66)은 학창시절 지독히 ‘평범한 학생’이었다. 초·중·고교 12년간 단 한 번도 상을 받아보지 못했다. “개근상은커녕 정근상도 못 받았다”고 한다. 성적도 180명 중 60~70등 정도로 ‘상위권’과는 거리가 있었다. 김 의장 스스로 “선생님조차 그런 애가 반에 있는지도 모를 학생이었다”고 했다.

그런 그가 지난해 2022학년도 대입제도개편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대한민국 입시 제도의 ‘밑그림’을 그렸다. 지금은 교육정책의 지형도를 바꿀 국가교육위원회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교육공약인 국가교육위원회는 중장기 교육정책을 논하는 대통령 직속 행정위원회다. 김 의장은 “교육이 바라봐야 할 곳은 ‘SKY대(서울대·고려대·연세대)’에 진학하는 소수 학생이 아니다”며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아이들의 눈을 빛나게 해줄 교육을 찾는 게 국가교육위원회 임무”라고 했다.

‘보통 학생들’에 대한 고민은 김 의장의 오랜 숙제이기도 하다. 김 의장은 중·고교 교사뿐 아니라 해직교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대 정책실장을 거쳤다.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비서관에서 물러난 뒤 50대에 동화책을 쓰기 시작한 것도 ‘요즘 보통 아이들의 생각’이 궁금해서였다. 이제는 그 숙제를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해 풀겠다는 김 의장을 지난달 25일 그의 15년 단골 맛집에서 만났다.

“국가교육위원회라는 새로운 詩”

김 의장이 추천한 남도 음식점 ‘여자만’은 한옥들이 이마를 맞대고 있는 서울 인사동 골목길에 자리잡고 있다. 김 의장은 “제철 재료로 음식을 내서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대표 정식을 주문하자 가장 먼저 나온 들깨죽은 소담한 한옥처럼 담백하고 고소했다. 곧이어 봄동으로 무쳐낸 겉절이, 주꾸미무침이 상을 채우며 봄을 실감하게 했다.

“언제부터 이 집의 단골이냐”고 묻자 김 의장은 “하도 익숙한 집이라 몇 년째 오는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김 의장을 대신해 여자만 대표인 이미례 영화감독(62)이 “김 의장은 2005년 문을 열었을 때부터 지금껏 꾸준히 찾아주는 ‘개국공신’”이라며 “대학 시절 문학회를 함께했던 선후배들과 자주 술잔을 기울인다”고 귀띔했다.

김 의장은 대학 3학년 때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국가교육위원회 출범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요즘에도 ‘시심(詩心)’이 이는지 궁금했다. 이날은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위한 법안을 대표발의한 날이었다. 김 의장은 “요새 하는 게 모두 시(詩) 쓰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새로운 걸 꿈꾸는 게 곧 시를 쓰는 일”이라며 “국가교육위원회처럼 새로운 시가 있겠느냐”고 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지금껏 교육계에 없던 조직이다. 10년 단위 국가교육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 의견 수렴을 담당한다. 국가교육위원회가 내린 결정은 교육부 등 관련 부처가 반드시 이행하도록 법에 명시해 단순 자문기구 이상의 구속력을 갖는다. 김 의장은 “인공지능(AI)시대에 산업사회 인간을 길러내면 그게 지옥”이라며 “노동뿐 아니라 여가까지 삶의 패러다임이 달라질 텐데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교육정책으로는 미래형 인간을 바로 세울 수 있겠느냐”고 했다. 10년 단위란 건 최소 두 정권의 기간 중 교육정책의 큰 틀을 유지해 5년제 대통령 단임제의 한계를 보완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위원 5명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두고 ‘독립성을 담보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김 의장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온 국민이 머리를 맞대고 낸 결론을 함부로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잘라 말했다. 이어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자치의 연장선상”이라며 “교육정책의 결정권이 중앙에만 쏠려 있다는 불만이 많은데, 권한을 나누고 몸집을 줄이는 걸 교육부 혼자서 하긴 어렵다”고 했다.

교사 12년, ‘해직’교사 15년

국가교육위원회 얘기에 열중한 사이 상에 음식이 빼곡히 놓였다. 김 의장은 꼬막을 잘게 다져 넣은 꼬막전을 권했다. 계란반죽의 고소한 맛이 퍼지는 중간중간 꼬막이 쫄깃하게 씹혔다. 꼬막전과 함께 나온 매생이전을 한 입 베어물자 입안 가득 바다향이 스며들었다.

“평소 미식을 즐기냐”고 묻자 김 의장은 “6남1녀의 6남으로 자랐는데 무슨 미식가겠느냐”며 소주잔을 채웠다. 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돈 버는 사람은 큰형 혼자였다”며 “먹고사는 일이 막막해 고등학생 때 9급 공무원시험을 봐서 합격했다”고 했다. 국어교육과에 진학한 것도 ‘대학에서 문학 공부를 하고 싶다’는 열망과 가정형편 사이의 절충안이었다. 김 의장은 “그 당시엔 사범대 등록금이 고등학교 수업료보다도 적었다”며 “교사라는 꿈이 명확한 채 사범대에 간 게 아니어서 ‘어쩌다 교육계에 몸담게 됐냐’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엉뚱한 질문처럼 느껴지곤 한다”고 했다.

교육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건 교사가 된 이후의 일이었다. 전두환 정부 시절 동료 교사들과 함께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분석하는 무크지 ‘민중교육’을 발간했다. 1985년 5월 20일 민중교육 창간호의 부제는 ‘교육의 민주화를 위하여’. 발간 한 달여가 지난 뒤 여기에 기고한 교사들이 줄줄이 경찰서로 소환되기 시작했다. 김 의장은 “사전검열이 있던 시절이었는데 검열을 통과하고 서점에서 판매까지 했었다”며 “학생운동 참여자를 격리하기 위한 ‘학원안정법’ 제정을 추진하던 정부가 뒤늦게 무크지를 사건화한 것”이라고 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년2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김 의장은 15년간 교단을 떠나야 했다. 일생 동안 12년간 교단에 선 걸 감안하면 교사생활보다 해직교사로 산 기간이 긴 셈이다. 교단을 떠나 있는 동안 초대 정책실장으로 전교조의 기틀을 닦았다. 합법화 직전 전교조를 떠났다. “이 정도 됐으면 후배들이 잘 하겠지” 하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최근 전교조는 교사 이익만 대변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김 의장은 “전교조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엔 역부족이었다”며 “노동조합으로서 조합원인 교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건 당연하지만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교육단체로서 어른스럽게 교육개혁의 비전을 세워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50대 교사로 복직해 만난 학생들은 ‘다른 별에서 온 아이들’ 같았다. 복직 첫해엔 ‘김정은도 무서워한다는’ 중2를 맡았다. 학생들이 나이를 물어 “1953년에 태어났다”고 답했더니 “1953년이면 3·1운동 전이죠?”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다른 세계에 사는 것만 같은 아이들과 소통하려 신화를 공부하다 동화책 작가로 ‘변신’했다. 김 의장이 쓴 판타지 장편동화 《고양이학교》는 8개국에 번역 출간됐다. 한국 작품 최초로 프랑스 ‘앵코?티블 상’을 수상하며 ‘한국의 해리포터’라는 별명도 얻었다.

“대학, 입시제도 개편뿐 아니라 출구전략 마련해야”

김 의장은 지난해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의 한복판에 있던 인물이다. ‘뜨거운 감자’를 끌어안고 지낸 소회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김 의장은 얕은 한숨 끝에 “많이 배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교육정책을 세우다 보면 사실 지방 소도시의 일반 학부모들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많진 않다”며 “공론화 과정에서 학부모들의 말을 들을 때면 ‘철학자와 토론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고 했다.

최근 잇따라 논란이 되고 있는 ‘사학 공공성’과 입시경쟁이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김 의장은 “한국은 해외와 비교했을 때 교육에서 사립의 비중이 굉장히 높은 편”이라며 “국공립과 달리 사립은 교육 수요자에게 강점을 계속해서 증명해야 하고, 입시경쟁 체제하에선 그게 ‘얼마나 입시경쟁에 유리한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표적인 게 자율형 사립고 논쟁이다. 김 의장은 “자사고 재지정 여부는 교육청의 권한”이라며 “다만 국가교육위원회는 장기적으로 사립학교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고 상생할 것인지를 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사립유치원 사태 역시 교육당국이 사학에 대한 중장기 관점을 세우지 못한 데 원인이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사립유치원 사태는 교육당국의 업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교육 수요가 확대되고 공공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 국가 재정을 투입했어야 했다”며 “그 몫을 사학이 대신해왔던 게 사실”이라고 했다.

사립유치원, 자사고, 대학 구조조정 등 ‘사학의 미래’ 역시 국가교육위원회에서 논할 수 있을 것이란 게 김 의장의 설명이다. 그는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교육의 출구전략이 시급하다”며 “특장점을 지닌 사립대학들이 괴멸하지 않고 체계적으로 몸집을 줄여나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교육회의는…중장기 교육정책 수립

국가교육회의는 2017년 말 ‘중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교육정책 수립’을 목표로 출범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분야 핵심 공약인 ‘교육 거버넌스 개편’을 대표하는 조직이다. 위원은 의장 외 위촉직 위원 11명, 당연직 위원 9명 등 21명이다.

국가교육회의는 지난해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작업을 맡아 논란의 한가운데에 섰다. 최근에는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국가교육위원회 출범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국가교육회의와 달리 단순 자문기구 역할을 넘어 교육부에 대한 구속력을 갖는다.

김진경 의장은 국가교육회의 상근위원, 대입제도개편특별위원장, 기획단장을 거쳐 지난해 12월부터 의장직을 맡고 있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 담임조차 존재 모르던 '평범한 학생'

■약력

△1953년 충남 당진 출생
△1971년 대전고 졸업
△1976년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한성고 국어교사로 교단생활 시작
△1985년 ‘민중교육’ 무크지 사건으로 해직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대 정책실장
△2000년 전동중 교사로 복직
△2005~2006년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
△2018년 12월~ 국가교육회의 의장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 담임조차 존재 모르던 '평범한 학생'

김 의장의 단골집 여자만

벌교 꼬막 등 남도 제철 해산물·모둠전 별미


서울 인사동 골목길에 자리 잡은 여자만(汝自灣)은 남도 제철 음식점이다. 여자만은 전남 순천만의 옛 이름으로, 여수 여자도를 중심으로 보성, 순천, 여수, 고흥으로 둘러싸여 있는 내해를 일컫기도 한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 담임조차 존재 모르던 '평범한 학생'

벌교에서 캐올린 꼬막 등 국산 제철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게 이 집의 특징이다. 대표정식(점심 1인 3만5000원·저녁 1인 3만8000원, 2인 이상 주문 가능)은 담백하게 부쳐낸 모둠전, 제철 생선회와 함께 간장양념을 소복이 올린 양념새꼬막을 낸다. 계절에 따라 메뉴는 달라져도 임자도 민어, 제주도 성게, 완도 김 등 국산 재료를 고집한다.

매콤칼칼하게 무쳐내는 꼬막무침(3만원), 꼬막을 잘게 다져 넣은 꼬막전(3만원)도 별미다. 요즘 같은 봄철에는 도다리쑥국과 주꾸미찜, 새조개 샤부샤부, 봄동무침을 맛볼 수 있다. 여름에는 들깻가루, 방아잎을 넣어 걸쭉하게 끓여내는 짱뚱어탕이 인기다.

여자만의 대표는 1984년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 딸’로 데뷔한 이미례 감독(62)이다. 이 감독은 “남편이 전남 고흥 출신이어서 시어머니가 철마다 꼬막을 보내주신 게 남도 음식점을 하게 된 계기”라고 했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2005년 여자만이 처음 문을 열 때부터 15년째 단골이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단골로 알려져 있다.

구은서/김동윤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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