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만한 복지예산 편성해놓고…돈 없다며 정부에 손 벌린 서울시
“정부에서 큰돈을 좀 갖다 주셔야….”

박원순 서울시장이 28일 서울 마포 서울창업허브에서 열린 ‘서울시-더불어민주당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이같이 말하자 좌중에서 웃음이 터졌다. 지하철역을 새로 놔달라는 심재권 민주당 의원의 지역구 민원에 대한 응수였다. 이날 회의는 미세먼지 해소 등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급하게 마련됐다. 통상 예산정책협의회는 연말에 열린다.

박 시장의 말대로 이날 서울시는 내년 사업별로 수천~수백억원의 국고 지원을 요구하며 조목조목 청구서를 내밀었다. 예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서울시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서울시는 미세먼지 대책으로 친환경차량 구매 자금 2885억원, 경유차 폐차 및 대체차량 전환 자금 1302억원 등을 달라고 호소했다. 개발용지로 바뀌는 녹지를 보전하기 위한 장기미집행 공원용지 보상비 2849억원도 포함됐다.

자치단체 혼자 할 수 없는 일이 많기 때문에 서울시가 집권 여당과 협의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방만한 예산 집행에 대한 성찰이 전혀 없는 서울시의 태도다. 올 서울시 복지 예산은 11조1000억여원으로 사상 최대다. 경직성 예산인 ‘정부 매칭 사업’을 감안해도 이례적으로 큰 규모다. 무상급식, 청년수당, 마을재생 등 수천~수백억원 단위의 ‘변형된 복지’도 셀 수 없이 많다. 올해 70억5000만원을 쓰는 서울의 한 도시재생 사업지가 대표적이다. 이곳엔 ‘코디네이터’란 이름의 비상근직 인건비와 찾는 사람이 없는 유령건물 매입·운영비로 수십억원이 투입된다. 실현 가능성과 상관없이 자유 프로젝트를 제안하면 수천만~수억원을 ‘아낌없이 주는’ 소액사업도 부지기수다.

다행히 협의회에선 전향적인 논의도 오갔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무임승차 노인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올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기준 1명을 태울 때마다 510원의 적자를 보는 서울교통공사 재무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5461억원의 순손실을 낸 서울교통공사는 2027년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진다. 서울시는 이날 지하철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 보전에 4143억원, 노후전동차 교체에 2333억원 등을 요청했다. 선심성 복지에 몰두하다 필수 인프라 투자를 놓치고 뒤늦게 국가에 손을 내미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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