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인권경영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다. 정부는 우선 공공기관부터 인권경영을 추진한 뒤 이를 마중물 삼아 민간기업으로 확산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첫발 내디딘 국내 인권경영 시스템…법무부·인권위, 실행계획 세운다
지난달 21일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등 30개 정부부처와 17개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8월 권고한 △산하 공공기관의 인권경영 실행 지원 △공공기관 인권경영 평가지표 신설·확대안을 모두 수용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는 일부 지방공기업을 제외한 860개 공공기관이 인권경영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공공기관 경영평가 시 인권경영 여부를 평가항목에 넣기로 했다. 각 기관은 인권경영위원회를 설치하고 기업 운영 및 주요 사업 인권영향평가를 해야 한다. 또 사내 혹은 협력사에서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올 경우 이를 구제할 시스템을 갖췄는지도 평가 대상이다. 중앙 공공기관은 경영평가 등급에 따라 인센티브가 달라지는 만큼 사실상 강력한 구속력으로 작동할 전망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국제사회와 인권위의 권고에 따라 정부가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 ‘기업과 인권’에 관한 사항을 정책 목표로 설정했다”며 “공공기관에서 시작된 인권경영이 차츰 민간까지 퍼져나가야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간기업까지 확산시킬 ‘기업과 인권’ 관련 규범은 법무부가 마련한다. 한진그룹 등 기업 오너가의 ‘갑질 논란’, 해외 진출 기업의 현지 인권침해 등 국내 기업이 인권침해 문제에 연루되면서 기업 경쟁력이 훼손되고 경영 리스크가 높아지는 사례가 늘어난 까닭이다.

법무부는 올해 상반기까지 민간 전문가에게 ‘인권경영 지침’ 개발 연구를 위탁한다. 국제인권기준에 맞춰 국내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인권경영 가이드라인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법무부 관계자는 “인권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강성 노동조합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며 “기업에 인권경영의 개념을 소개하고 실행방법을 안내해 오해와 거부감을 해소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하반기에는 재계·노동계·시민사회 의견을 수렴한 뒤 올해 안에 가이드라인을 배포할 예정이다. 모든 업종·기업에 적용할 강행규범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가이드라인을 기업이 내규로 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

내규로 채택한 민간기업에는 공공조달 참여 기업 선정 또는 공적자금 투자 대상 선정 시 가산점을 주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 등이 꼽힌다. 법무부 관계자는 “재계에서 LG그룹이 인권경영에 가장 모범적이어서 이들의 사례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며 “앞으로 인권경영이 확산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