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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열풍에 취한 엔터권력의 민낯

‘버닝썬 나비효과’가 거세다.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에서 발생한 단순폭행 사건이 경찰 유착 의혹과 한국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어두운 면까지 드러내며 거대한 ‘권력 게이트’가 됐다. 한류를 타고 고속성장 중인 국내 엔터테인먼트업계의 일그러진 단면을 보여준 사건이라는 평가도 있다.

한류열풍에 취한 엔터권력의 민낯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빅3 엔터테인먼트기업으로 꼽히는 SM·YG·JYP엔터테인먼트의 매출은 지난해 1조228억원으로 10년 전인 2008년(731억원)보다 14배가량 늘었다. 산이 높아진 만큼 골도 깊어졌다. 소속 연예인의 형사 리스크는 업계 전체를 뒤흔드는 메가톤급 폭탄이 됐다. 빅뱅 승리(본명 이승현·29)의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의 시가총액은 사건 이후 2000억원 이상 증발했다.

형사 리스크가 커지면서 엔터업계와 경찰·법조계는 더 밀접해졌다. 연예인의 형사 사건은 일반인에 비해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사례가 많다. 2008년부터 10년간 연예인이 연루된 주요 형사 사건 54건 중 실형으로 이어진 것은 3건에 그쳤다. 여기에는 검찰과 경찰 고위직 출신 전관을 앞세운 대형 로펌의 역할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엔터테인먼트회사는 형사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향우회와 동문회까지 동원해 연줄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약사건도 입건유예…10년간 연예인 범죄 54건 중 실형은 3건

“마약 사건은 원래 검사장이 와도 못 막는다.”

강용석 변호사는 2014년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소속사와 검찰 간 유착이 의심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당시 강 변호사가 거론한 사건은 가수 박봄의 ‘암페타민 밀반입’ 사건. 박봄은 2010년 미국에서 암페타민이 함유된 아데랄 82정을 한국으로 밀반입했다가 인천공항 세관에 적발됐다. 인천지방검찰청은 그러나 인천세관에서 통보받은 이 사건을 입건유예해 내사 단계에서 수사를 중지했다.
그래픽=신택수 기자 shinjark@hankyung.com

그래픽=신택수 기자 shinjark@hankyung.com

“잠잠해지고 나면 입건유예·무혐의 처분”

‘버닝썬 게이트’가 연일 대한민국을 달구면서 연예인과 권력기관 간 유착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10년간 연예인이 연루된 주요 형사 사건 54건을 분석한 결과 피의자가 실형을 받은 사례는 방송인 신정환(상습도박)과 가수 고영욱(성폭행), 힙합가수 이센스(마약 상습투약) 등 3건에 불과했다. 이들 연예인은 공통적으로 재범인 데다 죄질까지 불량해 실형 선고가 불가피했다는 평가다.

나머지 51건은 모두 기소유예, 벌금형, 집행유예 등 경미한 처분이 내려졌다. 연예인이 일으킨 범죄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마약 관련 사건 13건 가운데 이센스를 제외하고는 실형이 없었다. 같은 혐의여도 대형 소속사 출신 연예인은 관대한 판결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암페타민 밀반입에 연루된 박봄은 버닝썬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빅뱅 승리(본명 이승현·29)와 YG엔터테인먼트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마약담당 검사 출신인 조수연 변호사는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더라도 최소 집행유예가 나왔어야 할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연예인이 경찰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도 심심찮게 제기됐다. 방송인 이수근과 탁재훈은 2013년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을 룸살롱에서 접대하고 뒷돈을 건넸다는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석연치 않은 사유로 무혐의 처분된 사건도 있다. 한성호 FNC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방송인 유재석을 영입하기 2주 전인 2015년 7월 기관투자가들에 블록딜 형태로 주식을 대량으로 넘겨 235억원가량의 차익을 거뒀다. 금융감독원의 고발을 접수한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이 2016년 시세조종 혐의로 한 대표와 소속 가수 씨엔블루의 정용화 이종현 등을 수사하기도 했다. 세 사람 모두 유재석 영입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고, 그 덕분에 주식을 고가에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 대표와 정용화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이종현만 벌금 2000만원에 약식 기소됐다.

대기업 총수급 법률서비스 받는 연예인

한류 등으로 국내 엔터테인먼트업체들이 급성장하면서 소속 연예인에게 대기업 총수급의 법률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등 주요 엔터테인먼트회사들은 대형 로펌이 저마다 유치 경쟁을 벌일 만큼 ‘큰손’으로 떠올랐다. 표종록 JYP엔터테인먼트 부사장, 박종술 팬엔터테인먼트 사장, 최정환 로엔엔터테인먼트 이사 등은 변호사 출신으로 내부 법률 조언, 로펌 선임 및 협력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이사는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광장에서 엔터테인먼트팀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남자친구로부터 성관계 영상 유포 협박을 당한 걸그룹 카라 출신 구하라의 변호를 법무법인 세종이 맡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당시 세종은 대형 로펌으로서는 이례적으로 “2차 가해 행위를 중단할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연예인 형사 사건이 대형 로펌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이들 대형 로펌은 사건 발생부터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대응 전략을 체계적으로 컨설팅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터지면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우선 경찰 출신 등 전관 변호사를 전면에 투입한다. 언론에 알리지 않고 ‘비공개 소환 조사’로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물밑 작업을 하는 게 급선무다. 한 대형 로펌 형사팀 변호사는 “경찰 출신 연줄을 총동원해서 비공개 소환이라는 ‘수사상 배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최대 관건”이라고 귀띔했다. 부득이하게 언론에 알려졌다면 보도자료 입장문을 검토하고 고쳐주는 것도 이들 대형 로펌의 몫이다. 법적으로 불리할지 모를 내용을 걸러내기 위한 작업이다.

“기업가치 지키려면 형사리스크 관리 필수”

경찰 조사 후 검찰로 송치되면 로펌 소속 검찰 출신 변호사가 밀착 마크한다. 무혐의가 가장 좋다. 무혐의가 어렵다면 기소유예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2차 목표다. 검찰이 기소해 재판에 넘겨지면 그때부턴 검사와 판사 출신 변호사가 협업한다.

단계별로 대응할 때마다 변호사가 늘어나다 보니 연예인 사건은 일반 형사 사건에 비해 수임료가 비싸다. 전체적으론 2~3배의 비용이 든다는 게 변호사들의 설명이다. 가령 2000만~3000만원 정도에 수임할 사건이어도 연예인이라면 수임료가 5000만원 이상으로 오르는 식이다.

익명을 원한 한 국내 엔터테인먼트기업 대표는 “소속 스타 연예인은 회사의 핵심 자산이자 수출 상품”이라며 “기업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연예인의 형사 리스크 관리에 목숨을 걸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고윤상/이수빈/조아란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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