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사업을 할 때 교회와 성당, 사찰 등 종교시설이 개발구역 안에서 위치를 바꾸는 것(토지교환·대토)으로 조합과 합의했다면 추가 분담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행정심판 결과가 나왔다. 종교시설의 재개발 비용 분담 문제를 명확히 정리한 첫 번째 법률적 판단이다. 전국 재개발 사업지 안에 종교시설 관련 분쟁 해소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법인 세종이 왕십리교회 꽃재교회 삼성교회 등을 대리해 왕십리뉴타운제3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심판에서 지난달 25일 승소했다.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는 이들 교회 세 곳에 부과된 350억원 규모의 추가 분담금이 무효라고 결정했다. 행정심판은 피청구인 패소의 경우 추가 소송 제기가 불가능해 이번 결과는 최종심과 같은 법적 효과를 지닌다.

사건의 배경은 서울 하왕십리동 700 주변 13만6293㎡ 일대에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2182가구를 새로 짓는 사업이다. 재개발조합은 사업구역 내에 토지와 건물을 갖고 있던 교회 세 곳과 토지교환 합의를 체결해 놓고 350억원의 추가 분담금을 청구했다. 종교시설은 주택이나 상가와 달리 재개발을 추진할 때 이전할 토지를 받고 별도의 추가 분담금은 내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추가 분담금이란 재개발 사업이 끝난 뒤에 갖게 되는 부동산 가치와 재개발 전 가치의 차이만큼 조합에 내야 하는 돈이다.

조합은 지난해 7월 세 곳의 교회에 추가 분담금으로 350억원을 청구했다. 아파트나 상가를 분양받는 것뿐만 아니라 땅을 받은 것도 일종의 분양이라는 이유에서다. 재개발 사업에서 조합이 종교시설에 분담금을 부과한 첫 사례다. 그동안 재개발 지역 종교시설의 분담금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준이 없었다. 서울시 자체적으로 ‘뉴타운지구 종교시설 처리 방안’을 만들어 종교시설은 ‘대토합의’로 처리하라는 가이드라인만 있을 뿐이었다.

세종은 이들 교회를 대리해 “도시정비법상 관리처분 계획을 보면 분양받을 자를 대상으로만 분담금을 부과하기로 한다는 것이 입법 취지”라는 점을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에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종교시설이 토지를 받는 것도 재개발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조건으로, 현금 대신 보상 성격으로 땅을 받는다는 점을 강조해 승소를 이끌어냈다.

이승수 세종 변호사는 “이번 행정심판은 전국 수천 개 재개발 사업장의 종교시설을 처리하는 데 큰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승소를 이끈 세종 건설부동산팀은 70~80명의 변호사가 활동하고 있으며 ‘최장수 건설전문 판사’ 기록을 갖고 있는 건설분쟁 전문가 윤재윤 변호사(사법연수원 11기)가 이끌고 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