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소속 유치원들의 개학 연기를 예고했으나 우려했던 보육대란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날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유치원 원생들이 등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소속 유치원들의 개학 연기를 예고했으나 우려했던 보육대란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날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유치원 원생들이 등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최대 사립유치원 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4일 무기한 개학연기에 들어갔다가 하루 만에 이를 ‘무조건’ 철회했다. 사실상 ‘백기투항’이다. 교육당국은 물론 검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강력 대응을 예고한 데다 개학연기에 동참한 유치원이 전국 239곳에 불과한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덕선 한유총 이사장은 4일 입장문을 통해 “한유총이 전개했던 개학연기 투쟁을 조건 없이 철회한다”며 “국민, 특히 사립유치원에 유아를 맡긴 학부모에게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한유총은 수일 내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이사장의 거취를 포함한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대부분 자체돌봄…완전 휴업은 18곳뿐

정부·여론에 밀린 한유총, 하루 만에 개학연기 철회
한유총의 이 같은 백기투항 배경에는 ‘열세’라는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날 개학연기에 동참한 사립유치원은 전국 239곳으로, 전체 사립유치원(3875곳)의 6.2%에 불과했다. 이 중 221곳은 자체돌봄을 제공했다. 완전히 휴업한 곳은 18곳에 그쳤다. 당초 한유총이 공언한 참여 유치원 수는 1500곳 이상이었다.

이날 대부분 유치원이 개학연기를 철회해 학부모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주말 내내 유치원과 교육청의 공지사항을 확인하고 비상상황에 아이를 맡길 곳을 찾느라 애를 태웠다. 자체돌봄은 제공하더라도 통학버스 운행과 급식 제공을 중단한 곳이 속출했다.

이날 등원시간인 오전 9시께 서울 도곡동의 A사립유치원 앞은 택시와 자가용 등이 뒤엉켜 혼잡을 빚었다. 이 유치원이 자체돌봄만 제공하고 통학버스 운행을 중단하자 학부모들은 자전거까지 동원해 ‘등원전쟁’을 치러야 했다. 학부모 B씨는 “아이가 신입생이라 친구가 없는 상황에서 수업을 하지 않고 놀이시간으로 하루를 보낸다니 걱정이 크다”며 “마음이 불편해 오늘 반차를 쓰고 오후 2시에 일찍 하원시키러 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 한유총 공정거래법 위반 신고

정부는 한유총의 기자회견 이후 학부모들에게 긴급 돌봄서비스 신청을 받아 원아들을 인근 국공립유치원 등에 분산 배치했다. 하지만 긴급돌봄을 이용한 아동은 308명뿐이었다. 개학연기에 참여한 유치원 수가 한유총 추산에 못 미쳤고 대부분 유치원이 개학을 연기하면서도 자체돌봄은 제공했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은 물론 검찰, 국세청, 공정위 등이 엄중 대응을 예고하면서 개학연기에 따른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교육부는 이날 회원 유치원들에 개학연기를 강요한 한유총 본부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에 신고하기로 했다. ‘아이들을 볼모로 뜻을 관철시키려 하느냐’며 여론이 한유총에 등을 돌린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유총 소속 서울의 한 사립유치원 원장은 “교육정책을 세울 때 사립유치원 사정이 어려운 걸 감안해달라는 것이지 진짜 유치원 문을 닫아도 상관없는 곳이 있겠느냐”며 “영세한 유치원들은 교육청 지원금 없이 버티기 힘든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다행히 한유총 주장과 달리 대다수 사립유치원은 정상 개원했다”면서도 “지난 주말 사이 유치원 학부모들의 마음이 타들어가 교육부 장관으로서 마음이 무겁다”고 사과했다. 정부는 이날 개학연기에 동참한 사립유치원에 대해 5일 당초 예정대로 시정명령 이행 여부를 점검할 계획이다.

구은서/정의진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