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이대리] 천차만별 성과급에 울고 웃는 직장인들
SK텔레콤에 다니는 임 대리(32)는 요즘 성과급이 나오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순이익을 낸 자회사 SK하이닉스가 이달 초 직원들에게 월 기본급(본봉)의 1700%에 달하는 성과급을 지급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부터다. SK텔레콤은 SK하이닉스 지분 20%가량을 보유한 최대주주다. 임 대리는 “지분법상 SK하이닉스 순이익의 5분의 1은 우리 회사에 귀속되는 거 아니냐”며 “월 기본급의 17배까진 아니어도 수백%는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성과급은 연말·연초 직장인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월 기본급의 수십 배를 성과급으로 챙기고 환호하는 김 과장이 있는가 하면, 돈 대신 쌀 한 포대를 받는 데 만족해야 하는 이 대리도 있다. 성과급에 울고 웃는 직장인들의 사연을 들어 봤다.

“경쟁사는 500%나 줬는데…”

직장인들은 ‘내 성과급이 만족할 만한 수준인가’를 재는 척도로 동종업계 경쟁사의 성과급을 본다. 서울 대기업에 다니는 김 대리(29)는 지난달 받은 성과급 생각만 하면 화가 난다. 김 대리의 회사는 월 기본급의 100%를 성과급으로 지급한 데 비해 경쟁사인 A사는 500%씩 나눠 줬다.

김 대리의 회사는 A사보다 대중 인지도와 시장점유율이 월등히 높다. 그는 ‘분풀이’로 A사에 다니는 친구를 닦달해 저녁을 한번 거하게 얻어먹었다. 그래도 머릿속엔 서운함이 떠나지 않는다. “솔직히 우리 회사가 더 좋은 곳이라고 여겨 왔는데, 요즘 보면 A사가 더 실속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회사는 성과급 지급보다는 재투자나 주주 배당에 더 신경을 쓰거든요. 직장 고를 때 이런 경영 기조도 고려해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벤처기업 B사에 다니는 백 대리(31)는 업계 사람들에게서 “한턱 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쥐구멍에 숨고 싶어진다. B사는 매년 월 기본급 대비 300% 수준의 높은 성과급을 주는 회사로 소문 나 있다. ‘한턱’ 얘기를 듣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월 기본급 자체가 경쟁사의 절반 수준이어서 실제 지급되는 성과급 액수는 ‘쥐꼬리’만하다는 게 백 대리의 푸념이다. 그는 “말이 300%지, 나오는 액수는 경쟁사의 100% 성과급이랑 비슷하다”고 했다.

국내 항공사에 근무하는 최 과장(39)은 2014년부터 성과급을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지난해 다른 항공사들은 업황 호조에 힘입어 월 기본급의 100~300%에 달하는 성과급을 지급했다. 성과급을 주지 않은 항공사는 최 과장 회사가 유일했다. 그는 “올해도 성과급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나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의 사기도 점점 떨어지고 있어 서글프다”고 했다.

같은 그룹이라도 계열사마다 천차만별

국내 대표 그룹의 비주력 계열사에 다니는 윤 대리(33)는 올해 6년 만에 겨우 성과급을 받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는 주위에서 성과급 얘기를 꺼낼 때마다 스트레스가 많았다. “잘나가는 A그룹 직원이니까 성과급 많이 받았겠네”라는 말을 들으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무급휴가가 내려졌을 때도 뭣도 모르는 친구들은 ‘오, 대기업이라 역시 달라’라며 부러워하더라고요. 그때마다 없는 소리 하려니 자존심이 상하고, 가만히 있자니 열불이 나고….”

같은 기업 내에서도 사업부에 따라 성과급은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서 근무하는 박 선임(38)은 올해 초과성과인센티브(OPI) 지급 비율이 작년에 이어 연봉의 50%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환호를 질렀다. OPI는 한 해 경영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개인 연봉의 최대 50%까지를 보너스로 주는 제도다. 반도체 사업부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면서 보너스도 두둑해졌다. 박 선임의 남편도 삼성전자에서 일하고 있지만, 실적이 반도체보단 덜 나오는 생활가전 사업부 소속이어서 OPI 비율은 23%에 그쳤다. 박 선임은 “같은 회사에 다녀도 부서별로 성과급 차이가 크게 나다 보니 알게 모르게 불만을 갖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했다.

“돈 대신 쌀이라니요…”

인천의 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이 과장(32)은 지난 설 연휴 직전 성과급으로 20㎏짜리 쌀 한 포대를 받았다. 포장지에 ‘친환경’ 문구가 크게 적힌 이 쌀은 이 회사 계열사가 생산·유통 중인 상품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업계 사람들은 그를 만날 때마다 측은한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성과급으로 현금이 아니라 현물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사측도 주고 찝찝했는지, 아니면 직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끓어오르는 걸 알았는지, 얼마 뒤 현금 100만원씩 주더라고요.”

박 과장(32)이 다니는 서울의 C패션업체도 지난달 성과급 명목으로 30만원짜리 공기청정기를 나눠줬다. 전반적인 업황이 좋지 않아 C사는 올해 직원들 연봉도 동결했다. 이달 초 다른 회사로 이직한 박 과장은 “공기청정기를 집에 가져갔더니 가족들이 ‘직원 건강 걱정해 주는 좋은 회사에 다닌다’고 해 더 씁쓸했다”며 “올해 성과급을 받지 못했다는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고 했다.

성과급으로 드러나는 인사고과

유통 기업에 다니는 윤 과장(37)은 얼마 전 난감한 상황에 부닥쳤다. 그는 작년 인사고과에서 낮은 평가를 받은 탓에 지난 설 상여금이 적게 나왔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숨겼다. 문제는 며칠 전 그의 아내가 회사 동료 부인과 만나면서 터졌다. 윤 과장의 상여금이 회사 동료보다 적게 나온 것을 알게 된 것. “올해부터 부서별로 상여금 지급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얼버무렸지만, 미심쩍어하는 표정이 역력했어요. 솔직하게 털어놓을까 고민도 했지만, 그러면 제가 회사에서 인정을 못 받는다고 생각할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있어요.”

대형 건설사에 다니는 정 대리(33)는 지난해 성과급으로 본봉의 300%를 받았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기들과 비교해 보니 50만원 정도 적었다. 정 대리는 “남들보다 회사에 기여한 바가 적었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며 “‘일 안 했다’는 소리 들을까 봐 주변에서 성과급 얘기가 나오면 괜히 몸이 움츠러든다”고 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