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헌법적 중대 범죄" vs "직권남용죄 성립 안돼"…구속여부 밤늦게 결정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최종 책임자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이 2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해 구속 사유를 두고 5시간 넘게 검찰 측과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이날 오전 10시25분께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한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1일 검찰청사에 처음 출두할 때와 마찬가지로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포토라인을 지나쳤다.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병대(62)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도 오전 10시20분께 입을 다문 채 법정으로 들어갔다.양 전 대법원장 영장실질심사는 오전 10시30분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명재권 부장판사 심리로 시작됐다.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심문에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비롯한 이번 수사의 핵심 인력을 투입했다.심리에 참여한 검찰 측 인원만 7∼8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양 전 대법원장 측에서는 최정숙ㆍ김병성 변호사가 변론에 나섰다.이날 심리는 점심 휴정시간 약 30분을 포함해 오후 4시 무렵까지 5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양측 모두 도시락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다.검찰은 40개 넘는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가 모두 헌법질서를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라는 점을 강조하며 구속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를 만나 징용소송 재판계획을 논의한 점, '사법부 블랙리스트' 문건에서 인사 불이익을 줄 판사의 이름 옆에 직접 'V' 표시를 한 점 등을 단순히 보고받는 수준을 넘어 각종 의혹을 사실상 진두지휘한 증거로 판단한다.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세 차례 검찰 조사에서 한 진술이 물증이나 후배 판사들 진술과 어긋나는데도 구속하지 않는다면 관련자들과 말을 맞춰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본다.양 전 대법원장 측은 자택 압수수색과 세 차례 소환 조사에 성실히 협조한 점, 전직 사법부 수장으로서 도주의 우려도 없다는 점을 내세운 것으로 전해졌다.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법리 다툼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같은 법원 319호 법정에서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박 전 대법관의 영장실질심사에서는 지인 형사재판 관련 의혹이 쟁점으로 부각된 것으로 전해졌다.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형사사법정보시스템에 10여 차례 무단 접속해 고교 후배인 사업가 이모(61)씨의 탈세 혐의 재판 진행 상황을 알아본 혐의(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를 두 번째 구속영장에 추가했다.2017년 3월 법원을 퇴직한 임종헌(60ㆍ구속기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이씨의 투자자문업체 T사 고문으로 취업하도록 박 전 대법관이 알선한 정황도 확인됐다.검찰은 임 전 차장의 취업에 이씨의 재판 관련 민원을 들어준 데 대한 대가성이 있는지 수사 중이다.또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책임을 지고 법원을 떠난 임 전 차장의 진술을 막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고 증거인멸 정황으로 제시했다.양 전 대법원장은 심문을 마친 뒤 서울구치소로 이동해 영장재판부의 판단을 기다린다.구속 여부는 밤늦게 결정될 전망이다./연합뉴스
법원 안팎에는 팽팽한 긴장감…구속 촉구·반대 동시 집회경비 인력 법원 주변 500여명 배치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2일 만에 다시 포토라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 앞 포토라인을 지나게 된 양 전 대법원장은 이번에도 검찰 포토라인을 지날 때처럼 굳게 입을 다물었다.양 전 대법원장은 23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시작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오전 10시 24분께 법원에 도착했다.그는 "전직 대법원장 최초로 구속심사를 받게 됐는데, 심정이 어떻냐"는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잠시 멈칫했으나 예고한 대로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법정으로 향했다.양 전 대법원장이 공개적 자리에 선 것은 지난 11일 첫 검찰 조사 이후 12일 만이다.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책임자로 꼽히는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역시 굳은 표정으로 구속심사를 받기 위해 321호 법정으로 입장했다.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여부가 결정되는 '운명의 날'을 앞두고 법원 안팎에는 이른 아침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시위대 충돌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법원 앞에는 경찰 9개 중대 500명이 배치됐다.서울중앙지법 앞 법원 삼거리 오른편에는 '양승태 구속'이라는 플래카드를 커다랗게 내걸고 구속 촉구 집회가, 왼편에선 보수단체들이 '문재인 퇴출'이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구속 반대 집회를 열었다.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법원노조)는 "사법 농단이 수습되는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범죄사실은 충분히 소명됐고, 퇴임 후 잠적에 버금가는 행태들로 수사에 철저히 대비했던 점을 종합하면 증거인멸 가능성이 충분히 예견된다"며 양 전 대법원장 구속 촉구 집회를 열었다.이들은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것은 법원조직을 보호하는 처사가 아니다"면서 "제 식구 감싸기와 보은성 처분을 내렸다는 국민의 싸늘한 여론을 법리의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들어올 때 이용한 서관 출입구를 한시적으로 전면 통제했다.취재기자도 비표를 받아야만 서관 출입구 쪽에 접근할 수 있었다.경찰 경비 인력은 서울중앙지법 서관 방면에도 빽빽하게 배치됐다.양 전 대법원장에게 계란 등을 투척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일부 경비 인력이 장우산을 들고 대기하기도 했다.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이 각각 구속심사를 받는 321호 법정과 319호 법정에선 이날 다른 재판이 열리지 않는다.두 사람 입장 이후 복도에는 적막감이 흘렀다.사법행정관 남용 의혹의 정점으로 여겨지는 두 사람의 구속 여부는 23일 자정을 넘겨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