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이대리] 새해 목표 달성, 열정과 핑계 사이
철강회사에 다니는 고 과장(35)은 입사동기인 황 과장(36)의 ‘금연성공기’에 자극받았다. 황 과장이 금연한다는 것까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매주 아낀 담뱃값을 카카오페이 자유적금으로 부어 말레이시아로 여행을 다녀왔다는 얘기는 충격의 강도가 달랐다. 주변에서 여러 번 들어본 ‘금연적금’이지만 바로 앞에서 모범사례를 보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건강과 여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이토록 멋지게 잡아내다니. 고 과장은 곧바로 연 2%짜리 자유적금에 가입했다. 매주 9000원씩 붓기로 했다. 2년이 지나면 원금만 100만원이다. 신년 아침에 다섯 살배기 아들과 2년간 모은 적금으로 여행가기로 손도장도 찍었다.

고 과장처럼 의지에 불타는 직장인도 있지만, 대다수 김과장 이대리의 현실은 ‘작심 한 달’이다.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몬과 잡코리아가 지난달 17일부터 21일까지 성인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년 계획을 1년 내내 지킨다’고 답한 사람은 28.8%에 그쳤다. ‘채 한 달도 못 넘긴다’ 대답은 26.1%였고, ‘반년 정도 지킨다’는 14.2%, ‘매년 3월 정도까지 지키다가 포기한다’는 답변은 9.0%였다. 이들이 자신에게 매긴 점수는 평균 54점으로 낙제 수준이었다. 신년 계획을 둘러싼 김과장 이대리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분기마다 실적 공개합니다.”

전자회사에 다니는 이 대리(35)는 7년째 재무팀에서 관리회계를 담당하고 있다. 종종 공장을 찾아가 현금 흐름을 점검하고, 유휴 자산의 활용 방안도 고민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의 재테크는 개점 휴업 상태다. 주말에도 출근하기를 6개월째. 일에 집중하다 보니 증권 계좌를 열어본 지도 오래됐다. 그의 신년 계획은 나만의 재무제표를 만들고, 투자성적표를 분기마다 공개하는 것이다. 유흥비 등 불필요한 지출 항목은 별도로 묶어 집중 관리하기로 했다. 이 대리는 “나 자신에게 투자하는 투자회사를 따로 하나 만드는 셈”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에 다니는 박 과장(36)은 올해를 충실하게 보내기 위해 일찌감치 15개 신년 목표를 세웠다. 다이어트와 운동, 금연, 자격증 취득 등 신년 계획 4종 세트는 기본. 새해 출근길부터 커피도 끊었다. 하루 2만원씩 쓰던 커피값을 줄여 자기 계발 비용으로 쓰기로 했다.

정상치를 훌쩍 넘어선 체지방과 콜레스테롤 조절을 위해 하루 한 시간 헬스장 가기에도 재도전하고 있다. 해외 근무 지원을 위한 외국어 공부도 현재진행형이다. 일단 새해 첫 2주 동안은 성공적이다. 하지만 자신은 없다. 매년 중도 포기한 자신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박 과장은 “올해 연말에는 한 개라도 지켰다고 자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결혼 앞둔 이 대리 ‘독하게 배수진’

출판사에 다니는 이 대리(32)는 올봄에 치를 결혼식이 걱정이다. 생애 한 번 입는 드레스를 멋지게 소화하려면 다이어트가 필수다. 이 대리는 같은 팀 여직원 4명과 함께 5㎏ 감량을 목표로 5만원씩 걸기로 했다. 기한은 두 달, 감량에 성공한 사람이 돈을 독식한다. “결혼식 앞두고 무리하게 살을 빼다가 결혼식에서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죠. 넋 놓고 있다가 매년 작심삼일로 실패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네요.”

제약업체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최 대리(31)는 수십 번 넘게 실패한 금연을 다시 새해 목표로 정했다. 이번엔 각오가 남다르다. 최근 건강검진에서 비만에 고혈압 진단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입사 때만 해도 170㎝에 60㎏으로 호리호리한 체격이던 최 대리다. 하지만 올초 영업팀으로 옮긴 뒤 몸무게가 15㎏이나 불었다.

매년 귓등으로만 듣던 “운동 열심히 하고 술은 덜 먹고 담배는 끊으라”는 의사의 말이 이번엔 묵직하게 들렸다. 건강이 상했다고 부서를 옮길 수도 없다. 특별한 계획은 없다. 금연에 성공한 주변 사람들도 별다른 비결은 없는 것 같았다. 최 대리는 “거울을 볼 때마다 살 찌고 거뭇해진 내 모습에 자극을 받는다”고 했다.

쓰라린 작심삼일의 데자뷔

전자회사 재무팀에서 일하지만 여태 가계부를 제대로 쓴 적이 없는 이 대리(32)의 연필통에는 오색 펜이 한가득이다. 그가 입사한 4년 전부터 매년 초 365일 가계부 쓰기를 목표로 모은 펜들이다. 하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후배 직원이 늘어날수록 더 바빠질 줄은 몰랐다. 이 대리는 “채 두 달을 못 넘기고 가계부 쓰기를 멈추다 보니 스트레스만 받는다”며 “이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아예 가계부를 쓰겠다는 각오 자체를 포기하기로 했다.

정석(?)대로 작심삼일에 그치고 마는 직장인도 속출한다. 나이 서른이지만 여전히 ‘솔로’인 오 주임은 매년 ‘이번 크리스마스는 여자친구와 함께’를 새해 슬로건으로 삼았다. 하지만 동료들과의 술자리는 너무 유혹적이다. 남들은 연인과 함께 길거리를 거닐었을 신년에도 새벽까지 술자리를 달렸다. 작년 연말에는 ‘10도 이상 술은 먹지 않겠다’며 25회짜리 개인트레이너(PT) 운동권을 샀다. 하지만 아직 한 장도 사용하지 못했다.

작심삼일의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올초 수영을 배우기로 한 강모 과장(37)의 앞에 나타난 암초는 ‘실연’이다. 그는 연말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대화가 통해 같이 수영을 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내 그 남자와의 관계가 흐지부지돼 버렸다. 신년 계획도 포기했다. 집도 비슷한 곳에 있어 혹시 마주칠까 봐 아예 수영장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 과장의 작년 목표는 체중 5㎏ 감량이었다. 가을께 목표치에 도달했다.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눈에 띄게 살이 빠졌다. 복병은 겨울바람과 함께 찾아왔다. 송년회 시즌이 시작되면서 폭식과 폭음이 이어졌다. 연말엔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이 과장은 “올해도 체중 감량을 신년 목표로 세우긴 했지만 솔직히 엄두가 안 난다”고 푸념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