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2017년 3월 취임 직후 집무실 위치를 바꿨다. 26층에 있던 사장실을 15층으로 옮겼다. 직원들을 배려한 조치였다. 27층 본사 건물에서 저층부 엘리베이터와 고층부 엘리베이터가 모두 운행하는 곳은 15~16층뿐이다. 어느 곳에서든 직원들이 더 편하게 한 대표를 찾을 수 있도록 사장실을 이전했다. 한 대표 취임 이후 대표와 직원 간 만남은 크게 늘었다. 세 명으로 구성된 사장 지원팀의 주요 업무가 회의 일정 잡기일 정도다. 회의가 업무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지만 한 대표는 직원들과 되도록 많이 만나려고 한다. 회사의 비전을 공유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직원들 독려해 대안 찾아

일반 기업에서는 보통 대표가 주재하는 회의에 임원들이 들어오지만 네이버 회의 참석자는 다양하다. 회의 안건이 정해지면 담당 리더가 참석자를 정한다. 네이버에는 팀장, 임원 등의 직급 직위가 없고 각 영역 담당자를 리더라고 부른다. 나이도 따지지 않는다. 신입사원이 주도하는 회의도 있었다. 한 대표는 젊은 시각에서 정보기술(IT) 트렌드를 확인하기 위해 신입사원으로 꾸린 조직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이런 회의 방식은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동영상 유통 서비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구글의 유튜브에 밀려 고민이 많던 동영상 유통 서비스에 젊은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속속 반영됐고, 해외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2016년 1월 베트남에 정식 출시한 네이버의 동영상 유통 서비스인 브이라이브의 월간 실사용자(MAU)는 지난 10월 655만 명까지 급증했다.

직원들과 만나면 지시보다는 질문을 많이 한다. 문제점을 같이 찾고 실무자들이 답을 찾도록 독려하기 위해서다. ‘네이버가 배달 서비스를 왜 놓쳤을까요?’ ‘네이버의 OO서비스는 왜 20대 여성이 사용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네이버를 안 쓰는 시간에 무엇을 할까요?’ 한 대표가 참석한 회의에선 이런 질문이 이어진다. IT서비스는 대부분 새로운 것을 좇기 때문에 참고할 만한 자료도 많지 않다. 질문 속에서 직원 스스로 대안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 대표는 취임 첫날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도 “우리는 아무도 가지 않은 눈 쌓인 산에서 길을 직접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그가 국내 최대 인터넷기업 수장에까지 오른 비결도 ‘문제 찾기’였다고 한다. 그는 1989년 컴퓨터 전문지 민컴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나눔기술 홍보팀장(1994년)과 컴퓨터 전문지 PC라인 기자(1996년)를 거쳐 1997년 포털업체 엠파스로 옮겼다. 한 대표는 엠파스에서 인터넷 서비스 업무를 본격적으로 맡았다.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서로 다른 ‘언어’로 얘기할 때 주로 ‘통역’ 역할을 맡았다. 인터넷 이용자 입장에서 서비스의 문제점을 찾는 노력이다.

유연한 조직 운영으로 회사 체질 개선

엠파스에서 10년 동안 네이버와 검색 서비스로 경쟁하던 한 대표는 2007년 NHN(현 네이버)의 검색품질센터 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직 후 네이버 검색 서비스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2012년 네이버서비스1본부 본부장을 맡으면서는 업무 범위가 넓어졌다.

한 대표는 사업 전체보다는 개별 현안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직원들의 고민을 듣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른 업무까지 파악한다. 지금도 모든 업무를 구체적으로 챙기지는 않는다는 것이 직원들의 전언이다. 리더에게 대부분 맡기고 한두 개의 현안만 찾아 같이 논의한다.

조직은 탄력적으로 운영한다. 네이버 서비스에서 발생한 각종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다. 문제가 생기면 소규모 프로젝트팀을 꾸린다. 리더들이 사내 관련 전문가와 관심이 있는 임직원을 찾아 팀을 직접 꾸리기도 한다. 이 조직들은 세포처럼 합쳐지기도 하고, 필요하면 쪼개지기도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합한 형태를 찾아 조직이 계속 변한다.

예를 들어 검색 기술 관련 연구개발과 운영을 담당하는 조직인 네이버 서치와 인공지능(AI) 플랫폼 조직인 클로바는 따로 운영되다가 지난 2월 서치앤클로바로 묶였다. 동영상, 오디오, 쇼핑, 결제(페이·포인트 플랫폼), 장소(플레이스·예약 플랫폼) 등의 연구 조직은 새로 생겼다. 주요 연구개발 조직은 한 대표 취임 전 8개에서 지금은 13개로 늘었다.

‘사내 독립기업(CIC: company in company)’ 제도는 강화했다. CIC는 특정 사업과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새로운 실험을 마음껏 시도할 수 있도록 인사, 재무 등 조직 운영에 필요한 경영 환경을 사내에서 독립시킨 조직이다. 네이버 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인 셈이다. 한 대표는 CIC 대표들이 네이버 직원에서 벗어나 사업가가 되길 바란다. 그는 지난 5일 ‘2018 인터넷기업인의 밤’ 행사에서 “CIC 시스템에 변화를 주고 (사내에) ‘창업자 DNA’를 더 심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CIC 대표들이 기업가로 성장하면서 단단해질 때 네이버가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한 대표의 생각이다. CIC로 시작해 지난해 분사한 네이버웹툰은 미국 등지에서 글로벌 MAU 5000만 명을 넘어서는 등 해외에서 한국 웹툰의 바람몰이를 주도하고 있다.

기술 앞세워 위기 돌파

한 대표가 직원들과 만들려는 네이버의 구체적인 모습은 ‘기술 플랫폼’이다. 2016년 대표로 내정된 이후 첫 공개 석상(‘커넥트 2017’)에서 “네이버는 첨단 기술을 일상으로 끌어들여 모두가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대중화하겠다”며 “우리 서비스 안에서 파트너들이 원하는 사용자를 만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AI와 같은 기술 혁신을 통해 네이버가 ‘기술이 주도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하도록 회사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취임 후 ‘최대 위기’로 꼽히는 ‘드루킹 사건’도 기술 혁신으로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네이버는 논란이 된 뉴스 서비스를 내년 1분기 안에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 첫 화면에서 뺄 계획이다. 대신 첫 화면에 검색창과 각종 AI 서비스로 바로 연결해주는 푸른색 모양의 버튼인 그린닷을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10월 관련 개편안이 발표되자 일각에선 트래픽이 줄 것이라는 우려를 내놨지만 네이버 내부 분석 결과는 나쁘지 않다. 최근 개편안 베타테스트(시험) 기간 이용자의 1인당 체류 시간은 이전보다 15%, 1인당 검색창 접근 횟수는 20%, 뉴스 이용 비중은 13% 늘었다.

■한성숙 대표 프로필

△1967년 출생
△1989년 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1989년 민컴 기자
△1996년 PC라인 기자
△1997년 엠파스 검색사업본부 본부장
△2007년 NHN(현 네이버) 검색품질센터 이사
△2015년 네이버 서비스 총괄이사
△2017년 3월~ 네이버 대표이사 사장
△2017년 3월~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


■'매출 5조 시대' 연 네이버, 영업익 감소에도 투자·인력 확대 '총력'

AI·핀테크 등 사업 투자 활발

한성숙 대표(사진)가 이끄는 네이버는 올해 처음으로 매출 5조원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영업이익은 줄고 있다.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 지시 대신 질문하는 CEO…직급 떼고 아이디어 발굴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은 2217억원으로 1년 전보다 29.0% 줄었다. 지난해 3분기 이후 네 분기 연속 감소했다. 광고, 비즈니스 플랫폼, 정보기술(IT) 플랫폼, 콘텐츠 서비스 등의 수익이 모두 늘었지만 영업비용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3분기 영업비용은 전년 동기보다 32.3% 늘어난 1조1760억원에 달했다.

인공지능(AI), 핀테크(금융기술) 등 신규 사업 분야의 인력 비용이 많이 들었다. 네이버 직원 수(계열사 포함)는 지난 6월 말 기준 9100명까지 늘어났다. 작년 말(8100명)보다 14.1%(1000명) 증가했다. 작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AI 관련 인력을 1500명 이상 채용했다. 한 대표는 7월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우수 인재 확보는 가장 중요한 투자라는 측면에서 글로벌 인재 확보에 더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외 투자도 크게 늘었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해외 투자액은 9797억원에 달했다. 네이버는 9월 일본 자회사인 라인에 7517억원을 투자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해외 투자였다. 한 대표는 지난달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기존 사업 역량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 도전을 지속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는 라인을 통해 일본 등에서 인터넷은행, 증권, 보험, 대출 등 각종 핀테크사업을 추진 중이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