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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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헤어지면 전(前) 배우자의 노령연금액 중 일부를 청구해서 받을 수 있다. 이른바 국민연금의 분할연금 장치 덕분이다.

분할연금은 애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느라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이혼배우자가 혼인 기간 경제적, 정신적으로 이바지한 점을 인정해 노후소득 보장을 확보할 수 있게 하려는 취지로 1999년 도입됐다.

그런데 정부가 결혼 생활을 '5년 이상' 유지해야만 자격을 얻을 수 있었던 분할연금제도를 '1년 이상'으로 완화하겠다고 밝히자 "1년 결혼생활로 평생 연금을 나눠야 한다니, 너무한 것 아니냐"는 등의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은 24일 오해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설명하며 진땀을 뺐다.

▲ 왜 이런 논란이 나왔을까?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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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전(前) 배우자의 노령연금액 중 일부를 청구해서 받으려면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혼인 유지 기간이 5년 이상이어야 한다.

또 이혼한 전 배우자가 노령연금을 탈 수 있는 수급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분할연금 신청자 본인은 물론 전 배우자가 모두 노령연금 수급연령(1953년생 이후부터 출생연도별로 61∼65세)에 도달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들을 충족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혼 시점과 분할연금 수급 시점 간 시차가 많이 나고 전 배우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분할연금을 청구할 수 없는 불합리한 경우가 생긴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혼한 배우자의 노령연금 수급권 발생 시 연금액 분할방식'에서 '이혼 시점에 전 배우자의 혼인 기간에 해당하는 가입(소득) 이력 분할방식'으로 변경하고 분할요건이었던 최저 혼인기간 '5년 이상'도 '1년 이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결혼생활 20년에 걸쳐 월 소득 200만원으로 20년 동안 국민연금에 가입했다고 가정했을 때 이혼하면 각각 월 소득 100만원으로 각자 20년간 국민연금에 가입한 것으로 보고 연금을 나눠 가진다.

정부의 이런 계획이 전해지자 일부에서는 '혼인 기간이 겨우 1년에 불과한데 이혼하면 자신이 평생 낸 연금을 나눠 갖는 게 아니냐', '남자만 손해 아니냐' 등의 비난이 나왔다.

▲ 정부의 설명은? "평생 나누는 건 아냐"
사진=연합뉴스 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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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복지부는 혼인 기간이 1년인 경우에는 평생 낸 연금이 아닌 혼인 기간 1년에 해당하는 기간의 가입(소득) 이력만 분할 받는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가입 기간이 20년이더라도 이 기간에 혼인 기간이 1년이라면 1년의 가입 이력만 나눠 갖는다는 말이다.

게다가 개선안이 국회 입법을 거쳐 시행될 경우 이혼·분할 이후 각자의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최소가입 기간 10년을 충족해야만 분할연금을 받을 수 있다.

아울러 분할연금은 일방적으로 한쪽만 신청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성별과 관계없이 이혼당사자인 부부 모두 신청해서 나눌 수 있다고 복지부는 설명했다.

실제로 2018년 9월 현재 분할연금 수급자는 2만7853명이며 이 중에서 여자가 2만4584명(88.3%)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남자도 3269명(11.7%)에 달했다.

▲ 법원 판례 역시 분할연금의 확대 흐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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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된 법원의 판례를 살펴보면 이혼 후 분할 연금을 나누는 것은 확대되는 추세로 보인다. 이혼 후 재결합했다가 다시 이혼했다는 이유로 남편의 공무원연금을 나눠받지 못하게 된 여성에 대해 재결합 전 혼인기간까지 합산해 연금을 분할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온 것이다.

전직 공무원 유 모씨와 1986년 결혼해 2007년 이혼 후, 2008년 9월 재결합했다가 2016년 다시 이혼한 소 모씨는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분할연금 지급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소 씨는 유 씨와의 두번째 이혼 후 유 씨의 공무원연금을 분할해달라고 청구했으나 공단은 "재결합 후 두 사람의 혼인 기간이 공무원연금법에서 정한 5년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금 지급을 거절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1·2차 혼인기간을 모두 합산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이혼으로 인해 혼인기간이 단절됐다 해도 1차 혼인기간의 존재라는 과거 사실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혼으로 연속성이 단절됐다는 이유만으로 1차 혼인기간을 산정에서 제외하는 건 법의 목적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1차 혼인 기간에 부부가 공동으로 연금 수급권 형성에 기여한 부분 역시 2차 혼인 기간과 동일하게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재판부는 두 사람이 1차 이혼했을 때 공무원 연금에 대한 별도의 재산 분할이 이뤄지지 않은 점도 A씨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고려했다.

▲ 결국 '돈 문제'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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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처음 분할연금 조건 완화 발표가 나왔을 때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겨우 1년 같이 살고 이혼 후 평생 연금 나눠야 하냐? 1년 치만 나눠주든지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러니 누가 결혼하겠느냐. 남자가 무슨 봉이냐? 혼자 벌어 혼자 먹고사는 게 편하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정부의 해명이 나온 뒤에는 이러한 반응들이 다소 누그러지긴 했지만 수많은 부부가 이혼하고 있는 요즘, 분할연금 조건 완화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이혼배우자가 혼인 기간 경제적, 정신적으로 이바지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혼의 배경에는 문서와 수치로 증명할 수 없는 부부만의 속사정이 존재한다. 가족에게 고통을 줬던 다른 배우자를 이혼 후에도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상황은 남은 가족에게 또 다른 고통을 줄 수 있다. 이 부분은 "평생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다.

한 네티즌은 이혼 관련 커뮤니티에서 "저는 분할연금 자체를 반대한다. 분할연금은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양육비도 주지않고 신용불량자인데 제가 그동안 돈을 벌어서 생계를 책임졌고 아이들을 양육했다. 그런데 왜 연금을 분할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 법을 폐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혼은 정말 이사람과의 관계를 끝내고 새출발하기 위한 개인의 선택인데 왜 법에서 개인의 연금까지 분할하라고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국가에서 개인의 고통을 증가시키는 이 법을 당장 폐지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할연금 청구의 기준을 완화시키는 것은 경제적으로 자립할 준비가 안된 배우자를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좋은 취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분할연금은 결국 '돈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빠른 정책 시행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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