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폭로한 김태우 수사관에 대한 수사가 수원지방검찰청에서 이뤄진다. 김 수사관의 연고가 없는 검찰청에서 수사를 받도록 하겠다는 문무일 검찰총장 판단에 따른 것이다.20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전직 특별감찰반원인 김 수사관을 고발하자 문 총장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원지검으로 이송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김 수사관이 서울중앙지검에서 근무 중인 것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청와대는 지난 19일 오전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로 김 수사관에 대한 고발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당일 오후 사건을 형사1부에 배당했다. 형사1부는 정치적 사건을 주로 맡아 왔다.검찰 내부에서는 서울중앙지검이 김 수사관을 수사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다는 말이 많았다. 김 수사관이 형사3부에 소속돼 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 사이에서는 ‘한솥밥 먹던 수사관을 수사하라는 거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서울중앙지검은 수사관 입김이 센 편이라 검사가 수사관 처지를 무시하기 어렵다는 게 검찰 출신들의 전언이다. 한 현직 검찰 수사관은 “청와대 하명처럼 보일 만한 정치적인 사건을 놓고 수사관이 수사관을 수사하라는 것은 가혹한 처사”라고 말했다.사건 이송의 또 다른 배경으로는 김 수사관의 상관인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과 윤석렬 서울중앙지검장 관계가 꼽힌다. 박 비서관은 2012년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 당시 윤석열 당시 대구고검 검사를 도와 수사를 했다. 두 사람은 검찰 내에서도 절친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시절 두 차례 민정수석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첫 민정수석을 맡은 지 1년 뒤 시민사회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10개월도 안 돼 민정수석으로 돌아왔다. 한 정권에서 ‘사정의 칼’을 두 번이나 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누구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잘 알고 있을 문 대통령이 ‘민정수석실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적폐 청산을 외치던 이번 정부에서 ‘민간인 사찰’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 자체가 적지 않은 상처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연일 폭로전을 이어가고 있는 김태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특감반원은 20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의 일탈’이라고 선을 그은 청와대를 향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했다. “상부 지시나 묵시적 승인이 있었기 때문에 (첩보 보고서가) 작성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19일 자유한국당이 공개한 특정 언론·정치인 등을 대상으로 한 첩보 보고서가 보안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통해 상사의 ‘오케이’ 사인을 받고 작성된 문건이란 설명도 덧붙였다.청와대도 즉각 대응했다.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은 “김태우 직원이 지라시 수준의 첩보를 텔레그램을 통해 특감반장에게 보고한 것은 맞다”면서도 “이를 받아 본 특감반장이 이런 것들을 보고하지 말라고 했지만 김태우 직원이 ‘재미있지 않냐’며 넘겼다”고 했다.6급 수사관의 일방적인 폭로에 맞선 민정수석실과 국민소통수석실의 집단 해명에도 불구하고 김 전 수사관의 일탈을 의도적으로 묵인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날 박 비서관의 해명 역시 자칫 민간인 사찰로 비칠 수 있는 첩보들을 방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전 수사관이 ‘묵시적 승인’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청와대는 각 부처 대통령 업무보고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내심 난처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부처를 찾아가 내년 업무계획을 보고받는 것은 문재인 정부 3년 차를 앞두고 처음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청와대와 김 전 수사관의 진실 공방이 연일 정치권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 가고 있다. 민정수석실과 특감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조국 민정수석을 해임하라’ 등의 청원까지 등장한 상태다.논란의 중심이 된 ‘특감반’을 만든 장본인이 노무현 정부 시절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이다 보니 그 여파가 더욱 크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당시 노 대통령은 취임 후 고위공직자 비위 첩보 수집을 위한 조직 신설을 주문했고 ‘문재인 수석’이 특감반을 만들었다. 그 후 15년이 흘러 특감반이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을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때다.문 대통령은 2005년 두 번째 민정수석을 맡으며 민정수석실 명칭을 바꾸고 기능과 역할을 축소하는 ‘작은 민정’을 강조했다. 탈(脫)권위주의 시대에 발맞추기 위해서다. 당시 ‘문재인 수석’은 “인터넷으로 네티즌 여론이 실시간으로 파악되고, 오프라인상의 여론도 전문적인 여론조사 방식에 의해 필요할 때마다 조사돼,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부터 ‘말씀’에 대한 여론 반응에 이르기까지 가감 없이 보고되므로 ‘여론 수렴과 민심동향 파악’을 위한 민정수석실 역할은 크게 줄어들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시대 변화에 따라 불필요한 민정수석실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이미 13년 전에 밝힌 셈이다.하지만 10여 년 후 ‘문재인 수석’의 뜻은 이번 정부에서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의지와 달리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김 전 수사관이 작성한 개헌 등에 관한 첩보에 대해 “국정 관련 여론 수렴이나 민심 동향 파악이 민정수석실 전체의 업무 영역”이라고 해명한 것만 봐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숙제는 “이상과 현실 간 괴리를 좁히는 일”이라던 한 원로학자의 말이 떠오르는 이유다.wonderful@hankyung.com
"검찰의 칼 어느쪽 향할지 지켜보겠다"…특검·국조 거론하며 운영위 소집 압박자유한국당은 20일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에 대한 전방위 불법 사찰 의혹'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며 대여 총공세에 돌입했다.전날 청와대 전 특별감찰반원인 김태우 수사관이 작성한 첩보 문건 목록을 전격 공개한 한국당은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검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이인걸 특감반장 등 모두 4명에 대해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했다.이번 의혹과 관련해 조국 수석을 비롯한 청와대 민정라인은 물론, 임종석 비서실장까지 겨냥한 모양새다.또 국회 차원에서는 바른미래당과의 공조를 통해 1단계로 국회 운영위원회 소집을 요구하고, 검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 2단계로 '특검·국정조사 카드'를 꺼내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나경원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을 했고, 이 정권 실세들의 비리는 묵살했다는 게 명백히 드러났다.이것만으로도 청와대는 책임져야 한다"며 고발 방침을 밝혔다.나 원내대표는 "검찰이 칼을 어느 쪽으로 겨누는지 똑똑히 지켜보겠다"고도 했다.이와 관련, 당 법률지원단장인 최교일 의원은 '청와대 특별감찰반 정권실세 사찰보고 묵살 및 불법사찰 의혹 진상조사단' 회의에서 "직권남용 혐의의 피고발인은 조 수석, 박 비서관, 이 특감반장"이며 "직무유기 피고발인에는 임 실장도 포함된다"고 말했다.우윤근 주러시아 대사의 인사검증에서 비위 의혹이 불거졌음에도 인사를 한 것은 임 실장의 직무유기에 해당한다는 게 한국당 주장이다.최 의원은 전날 한국당이 공개한 첩보 보고서 목록과 관련, "저희도 문건의 구체적인 내용은 갖고 있지 않다"며 "검찰에서 김태우 등 관련자를 조사해서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한국당은 또한 운영위 소집을 통한 진상규명은 물론, 국정조사와 특검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고 있다.나 원내대표는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에게 수차례 운영위를 열 것을 요구했다"며 "민주당은 정권의 잘못된 점을 감추려 하지 말고 운영위 소집에 즉각 응하라"고 촉구했다.나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일단 검찰 수사를 지켜보겠지만, 검찰 수사가 '특감반원의 개인 일탈' 쪽에 초점을 맞춘다면 검찰 수사를 기다리긴 어렵고, 특검, 국조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이와 함께 '청와대 특별감찰반 정권실세 사찰보고 묵살 및 불법사찰 의혹 진상조사단' 회의에서는 대검찰청이 김태우 수사관과 관련한 2건의 사건을 모두 수원지검으로 이송하기로 한 데 대한 비판도 나왔다.최교일 의원은 "사건 축소"라며 "오늘 고발로 서울중앙지검이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김정재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언론과 세간의 이목을 비켜 가기 위한, 축소수사를 위한 꼼수다.임종석, 조국 사건과 함께 김태우 사건도 중앙지검에서 수사하라"며 "청와대 민간사찰 의혹은 단순 문건유출이 아니라 '국기문란사건'으로, 검찰이 철저한 수사로 청와대 광기를 멈춰세우라"고 했다.진상조사단장인 김도읍 의원은 "총리실 문모 수사관은 같은 골프접대 의혹에도 아무 징계나 수사 의뢰 없이 총리실에 원대 복귀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이 정권의 최고 실세인 김경수 경남지사의 고교 동문이기 때문인가"라고 주장했다.이어 "김태우 수사관만 검찰에서 수사하는 것은 정권 실세를 사찰한 데 대한 명백한 보복"이라고 비판했다.또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한국당 의원들은 "김태우 수사관의 감찰 목록에 '낙하산 인사'인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민주당 출신 우제창 전 의원에게 커피 머신 납품 특혜를 줬다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비리나 유착 의혹에 대해 밝혀야 한다"며 민주당에 국토위 긴급현안질의 개최를 요구했다.이들은 김현미 국토부 장관을 향해서는 이강래 사장 특혜비리 의혹에 대한 국토부의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한편, 한국당 차원에서 감사원에 감사 청구를 하겠다고 밝혔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