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 이미지 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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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월 아이를 둔 미혼모입니다. 갑작스러운 아이 폐렴 입원으로 큰 돈을 지출해야 하는데 아이 아빠는 나몰라라 하고 친정 부모님도 교통사고로 누워 계시는 처지라..."

"뇌종양과 식이장애, 극심한 빈혈로 집청소를 하는 것도 여러날이 걸리며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입니다. 현소판 부족으로 기절하기 일쑤지만 세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서 죽을 수도 없습니다. 가장 무서운 건 추위인데 입을 옷과 신발이 없으니 제발 안 쓰는 옷과 신발을 보내주세요. 화장품도 보내주시면 좋고 여름 옷이라도 감사히 입겠습니다."


경제난에 허덕이는 서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현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플루언서[influencer]들이 받고 있는 DM(당사자만 볼 수 있는 다이렉트 메시지) 내용이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에서 수십만 명의 구독자(팔로어)를 보유한 ‘SNS 유명인’을 뜻하는 인플루언서.

화려함 뒤에 드러나지 않았던 그들의 남모를 고통을 추적해 봤다.
금전이나 물품을 요구하는 DM 사례들
금전이나 물품을 요구하는 DM 사례들
"SNS로 팬들과 소통을 하다보니 이런 저런 문의나 안부를 DM으로 보내시는 분들이 늘어갔어요. 처음엔 고마운 마음에 가능한 한 답을 해 줬죠. 그런데 어느날 아이가 아프다면서 돈을 보내달라는 거예요. '진짜인가' 싶을 정도로 사연이 구체적이고 어떻게 안 좋은 일이 이렇게 이 분에게 연달아 일어날 수있을까 싶을 정도로 안타까웠어요. 부모님은 사업이 망해서 도망다니시고 남편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는데 아이가 큰 병에 걸려서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조금이라도 보탬을 줘야 하나 싶던 차에 동료한테 말했더니 '그거 여기저기 보내는 DM이야. 나한테도 여러 번 왔었어'라고 말해주더라고요. 확인해보니 아이디도 동일했어요."

배우 A씨는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DM으로 돈을 빌려달라거나 안입는 옷을 보내달라는 메시지가 와도 무시한다. 사연은 다르지만 결국은 돈을 보내달라는 DM이 오는 횟수가 갈수록 늘고 있다"라고 전했다.

"아이가 아파서 입원해야 하는데 양육수당은 지난달에 이미 병원비로 다 써버렸고 제가 지금 도움을 받을 곳은 사채 뿐입니다. 언니가 돈을 보내주시면 12개월에 걸쳐 갚을게요. 언니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사채를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마지막으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메시지를 보냅니다. 간절히 부탁드려요."

이같은 DM을 최근 받은 가수 B씨는 자신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 이같은 메시지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금전이나 물품을 요구하는 DM 사례들
금전이나 물품을 요구하는 DM 사례들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고 돈을 요구하는 DM을 보낸 사람만도 벌써 40명에 육박한다. 줄기찬 요구에 DM을 확인 안하면 게시글 댓글을 통해 "다이렉트 메시지 빨리 확인해 달라"고 독촉을 한다.

B씨는 "그런 DM 보내는 분의 계정에 가보면 모두 비공개거나 게시물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나 같으면 그 장문의 글 쓸 시간에 뭐 다른 일이라도 해서 돈을 조금이라도 벌겠다. 계좌번호 보내면서 당당히 돈을 보내달라는 글들을 볼 때면 마치 내게 돈을 빌려줬다 받으려는 사람인가 싶을 정도다"라고 하소연했다.

이런 금전 요구에 비해 안 입는 옷 등을 보내달라는 경우는 애교에 불과하다.
금전이나 물품을 요구하는 DM 사례들
금전이나 물품을 요구하는 DM 사례들
뷰티 인플루언서 C씨는 최근 자신의 계정에 자신이 받은 DM을 폭로하면서 "이 분이 줄기차게 옷과 신발을 보내달라는 요구를 해 와 피가 마른다"면서 "너무 스트레스 받으니 제발 그만 보내라고 사정해도 멈추지 않는다. 옷, 신발, 화장품 줄테니 만나자, 어디서 보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해당 메시지에는 위와 같은 "세 아이 엄마인데 아이들이 입을 옷이 없다. 옷 몇 벌로 버티고 있는데 가장 무서운 게 추위다. 여름 옷이라도 보내달라. 화장품을 보내주면 감사한 마음으로 울면서 쓰겠다"면서 자신의 집주소 전화번호가 담겨 있었다.

이 폭로에 수많은 네티즌들은 댓글을 달아 "명품이 많아 보이니까 기부 받아서 팔려는 것 아닌가", "내가 받은 메시지와 똑같아 소름이다", "연예인 인스타그램에 이 분이 글 올린 거 많이 봤다"는 제보가 줄을 이었다.

실제 최근 중고카페에서는 무료나눔을 통해 받은 물품을 기부받은 사람이 다시 중고장터에 판매용으로 내놓아 논란이 된 바 있다.

타인의 선의를 악용해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데 쓴 것이다.

배우 D씨는 "평균 주 4~5회 정도 받는데 DM 내용 또한 '임신했는데 월세 낼 돈이 없다', '아이를 혼자 키우는데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 '가족이 사고를 당했는데 지금 당장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 등 각양각색이다"라며 "전에는 보이스피싱이 성행했다면 최근엔 DM을 통한 금전 요구가 신종 범죄로 성행하는 듯 하다. 그 중엔 정말 간절한 마음에 보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가 한 명은 걸리겠지 하는 생각에 불특정 다수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이런 DM을 받는 입장에서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의견을 전했다.

한편 경찰청이 최근 발표한 '2018년 3분기 사이버 위협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발생한 사이버 피싱은 1195건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392건)과 비교해 3배 넘게 증가한 수치다. 각종 사이버 범죄 중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났다.

특히 모바일 메신저를 통한 송금 유도 등의 사이버 '피싱'(Phishing) 범죄가 지난해 대비 3배 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범죄 대상으로 삼은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100만원 이하로 입금을 부탁하는 전략도 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온라인 구걸 행위는 처벌 대상에 해당한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고아로 자랐고 돌봐줄 사람이 없어 고시원에서 생활한다", "암 투병 중인데 병원비가 없어 치료조차 받지 못한다. 거주지도 일정하지 않다" 등 ‘동정심 유발 수법’으로 3명에게 1212만원을 뜯어내 사기 혐의로 기소된 이모 씨에게 서울동부지법 형사9단독(정혜원 판사)은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각 범행은 피해자들 신뢰를 저버린 것으로서 그 죄질이 좋지 않은 점, 동종 누범기간 중 범행을 저지른 점, 피해자들이 다수고 피고인에 대해 엄벌을 탄원하는 점을 들어 실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아는 지인을 사칭할 지라도 전화를 통해 직접 신분을 확인할 때까지 돈을 이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