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건설사들이 서울 강남의 재건축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수억원의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포의 한 조합원은 경쟁 관계인 두 건설사로부터 각각 수백~수천만원의 현금을 수수하는 등 불법에 적극 가담해 이례적으로 입건되기도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강남 재건축 공사 수주에 뛰어든 현대·롯데·대우건설 임직원과 홍보대행업체 대표, 조합원 등 334명을 도시및주거환경벙비법(도시정비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고 11일 밝혔다.

현대건설은 반포 1·2·4주구 재건축 시공사로 선정되기 위해 조합원에게 1억1000만원 상당의 고급 가방과 현금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롯데건설과 대우건설은 신반포 15차 재건축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조합원에게 각각 2억, 2억3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했거나 제공하려고 시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건설사가 조합원에게 제공한 금품은 현금부터 고급 가방, 만년필 등으로 다양했다. 신반포 15차 아파트에선 한 조합원의 가족이 롯데건설과 대우건설 양측으로부터 각각 2000만원과 400만원을 받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조합원이 금품을 거절한 경우에는 조합원 신발장에 선물을 놓고 나오거나 경비실에 맡기는 방법 등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100만원 이하 소액을 받은 대다수 조합원들은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했으나 금품수수 규모가 크고 다른 조합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일부 조합원에 대해서는 피의자로 입건했다고 설명했다.

건설사들은 조합원 접촉을 위해 모두 홍보대행업체를 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형식상 홍보대행업체가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전달하도록 해야 향후 문제가 불거지더라도 책임을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실제 건설사 측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홍보대행업체에 홍보 용역대금을 지급하였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홍보대행업체 직원들이 건설사 명함을 사용하며 조합원에게 접근한데다 건설사에 금품 제공 여부를 일일이 보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불법적으로 조합원에게 전달되는 금품이 결국 재건축 사업비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는 만큼 앞으로도 관련 수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