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롭지만 불행하다는 아이들에게 '희망으로서의 교육' 전하고 싶어"

교수에서 '교육 소통령'으로
80년대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 주도
마르크스 책 좀 읽고 방방 떴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겁도 없었다

교육감 출마 후회하냐고?
백방으로 후보 물색하다 직접 나서…사려 깊었다면 출마 안 했을 것
교육청 앞 피켓시위 마주칠 때마다 '옛날엔 내가 저기 있었는데…' 상념

한국 사회에 '성장의 역설'
부모들은 늘어난 경제력으로 사교육에 올인 해 아이들 힘들게 해
우리가 '괴물' 돼가지 않나 돌아볼 때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3시간가량 대화하면서 조희연 서울교육감을 몇 번이나 ‘교수님’이라고 부를 뻔했다. 1980년대 진보적 학술운동을 주도하던 ‘교수 조희연’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다. 조 교육감은 대화 중간에 ‘성장의 역설’,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 등 사회학 용어를 즐겨 썼다. 흡사 강의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조 교육감은 교수 시절 자신을 ‘2선 지식인’이라고 규정했다. 노동 현장에 투신한 동료들에 비해 “적당히 실속도 챙기면서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겸양의 뜻이 담겨 있다. 2선 지식인 조희연은 지금은 서울의 초·중등교육을 책임지는 ‘교육 소통령’으로 변신했다. 지난달 16일 저녁 조 교육감의 20년 단골 맛집에서 그를 만났다.

‘2선 지식인’에서 ‘교육 소통령’으로 변신

‘한경과 맛있는 만남’을 위해 조 교육감 측에 “단골 맛집을 선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 교육감은 서울 구로구 오류동 성공회대 후문 인근에 있는 본가(本家)칡냉면을 선택했다. “찬바람 부는데 냉면집이 괜찮겠냐”고 했더니 “교수 시절의 추억이 워낙 많이 서린 곳”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본가칡냉면은 대로변 낡은 건물 2층에 있는 평범한 동네 냉면집이었다. 시의회 참석 일정 때문에 조 교육감은 15분가량 늦게 도착했다. 테이블엔 전채 요리 격인 물만두가 깔려 있었다. 밤톨만 한 크기여서 한 입에 쏙 들어갔다. 최규남 본가칡냉면 사장은 “인근 만두 전문점에서 정기적으로 공급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교육감은 단골 맛집에 대한 ‘변명’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유명 맛집을 찾아다니는 젊은 세대에게는 성에 안 찰 수도 있지만 은은한 맛이 있어요. 젊은 친구들은 남녀 간에 애정 표현을 할 때도 적극적이지만, 우리 세대는 그렇지 않잖아요. 은은하고 오래가는 걸 좋아해요. 이 식당이 딱 그래요.”

학교 근처 맛집이어서인지 본격적인 대화는 학창 시절과 교수 시절 얘기로 시작됐다. 서울대 사회학과 75학번인 조 교육감은 연세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땄다. 흔치 않은 이력이다. 그는 “아마 대한민국에서 서울대와 연세대 두 대학의 석·박사 과정에 모두 합격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연은 이랬다.

“학창 시절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감옥살이를 했어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뒤 복학 조치가 이뤄져 1980년 8월 학부를 졸업했죠. 그해 12월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 시험에 합격했는데 학생운동 이력 때문에 최종적으로 불합격 처리됐어요. 그래서 간 곳이 연세대였죠. 석사과정 졸업 후 서울대 박사과정에 합격했지만 어려울 때 품어준 곳에 대한 의리를 저버릴 수 없어 결국 연세대에 눌러앉았어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감옥살이

대화가 한창 무르익을 때 조 교육감의 대각선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성 손님 3명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섰다. 조 교육감은 “떠들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을 건넸다. 여성 손님들이 “TV에서 많이 봤어요. 집값 좀 오르게 해주세요”라고 하자 조 교육감은 “저도 이 동네 주민인데, 우리 집값도 안 올라요”라며 껄껄 웃었다. 그러는 사이 종업원이 다가와 냉면 주문을 받았다. 조 교육감은 물냉면을 주문했다. 냉면이 나오기 전 녹두빈대떡이 먼저 상에 올랐다. 녹두가루와 나물을 섞어 두툼하게 부쳐냈다. 녹두빈대떡은 맛이 구수해 상큼한 맛의 냉면과 음식 궁합이 좋다고 조 교육감은 설명했다.

조 교육감은 1980년 중·후반 민주화 운동 진영을 뜨겁게 달궜던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을 주도한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당시 한국의 자본주의 및 국가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고, 그것을 타파할 실천전략을 두고 진보진영이 벌인 논쟁이다. 조 교육감은 “40대 소장학자들이 논쟁을 주도했는데, 마르크스 책 좀 읽고 방방 떴다”며 “지금 생각하면 참 겁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런 이력에 비춰보면 2014년 교육감 출마는 다소 의외였다. “교육감 출마를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조 교육감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때 조금만 더 사려 깊었으면 출마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조 교육감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이었다. 진보 교육감 후보를 반드시 내야 한다는 ‘책임감’에 백방으로 후보를 물색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전직 대학총장, 전직 장관 등을 찾아가 권유했지만 나서는 이가 없었다.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이 후보로 나섰다.

“돌이켜 보면 참 철이 없었어요. 선거 비용이 어느 정도 드는지, 당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아무런 감이 없었어요. 책임감 하나만으로 선거에 나섰죠.”

“뚜렷한 이념 지향성은 독이 될 수도”

한 시간여가 흘렀을 무렵 대표 메뉴인 칡냉면이 나왔다. 면은 칡가루로 만들어 연한 갈색을 띠었다. 개운한 육수에 담긴 면 위에 달걀, 오이, 깻가루, 양념장이 올려져 있었다. 100% 국산 고춧가루로 만든 양념장이 새콤달콤한 맛을 더했다. 조 교육감은 “처음엔 평범한 맛이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묘하게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며 칡냉면을 먹기 시작했다.

뚜렷한 이념 지향성은 교육감 같은 선출직 공직자에겐 때론 ‘독(毒)’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우려를 제기하자 조 교육감은 ‘지남철’ 얘기를 꺼냈다.

“집무실에 지남철에 대해 쓴 신영복 선생님의 서화 액자가 걸려 있어요. 지남철은 늘 북쪽을 가리키지만 끊임없이 떨리고 있어요. 저 또한 진보적인 방향성은 견지하되 현실의 복잡성을 이해하려고 늘 노력하고 있어요.”

서울교육청 정문 앞에선 1년 365일 교육 분야 이해관계자들이 피켓 시위를 벌인다. 조 교육감은 아침 출근길에 이들과 마주칠 때면 “옛날엔 내가 저 자리에 있었는데…”라고 생각한단다. 그는 그러나 “행정가는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스피릿(정신)’을 공유할 순 있지만 동일시될 수는 없다고 자꾸 되뇐다”고 했다.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단일변수 분석’을 하면 되지만 행정가는 목표 실현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갈등을 조정하는 ‘다변수 분석가’”라는 것이 조 교육감의 지론이다. 이런 생각은 서울교육청의 정책에도 반영됐다. 조 교육감은 전임자인 보수 성향 문용린 교육감의 정책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수용했다고 했다. 보수진영의 대표적 교육정책인 ‘교권보호’ ‘인성교육’ 등도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사실 (교육정책 중) 70~80%는 공유지대에 있다”며 “진보 교육감의 정체성에 관련된 건 일부”라고 강조했다. 조 교육감이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대표 정책으로 콕 집어 언급한 것은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폐지’였다.

“자사고 폐지는 양보할 수 없어”

한동안 서울교육청 외벽에는 ‘아침이 설레는 학교’라고 쓰인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조 교육감의 교육 철학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문구다. “요즘 아이들이 교육감님 어릴 때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냐”고 묻자 “오늘 받은 질문 중 가장 재밌는 질문”이라며 ‘강의’를 시작했다.

“명백히 더 불행하다고 느낄 것 같아요. 더 풍요롭고, 더 좋은 여건에서 교육을 받지만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성장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죠.”

조 교육감은 한국 사회를 ‘강한 가족주의’와 ‘강한 메리토크라시’가 지배하는 사회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경제력 격차는 갈수록 벌어져 부모들은 늘어난 경제력으로 아이들의 사교육에 올인하고 있고, 이로 인해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아이들 사이에서 ‘자해놀이’가 유행한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믿기 어려웠다”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자신과 한국 사회가 ‘괴물’이 돼 가고 있다는 걸 성찰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육감으로 일하는 동안 ‘절망으로서의 교육’을 ‘희망으로서의 교육’으로 전환하고 퇴장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밤 9시가 가까워지자 종업원이 “문 닫을 시간이 됐다”고 했다. 끝으로 “교육감으로 일하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은 언제였느냐”고 물어봤다. 조 교육감은 “가슴 아팠던 순간이 너무 많아 하나를 콕 찍어서 말하기 그렇다. 이 질문엔 응답하지 못하는 것으로 하자”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희연 서울교육감 서울교육청은…

서울교육청은 서울지역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올해 4월 기준 유치원, 초·중·고교, 특수학교 등 2232개의 학교가 소속돼 있다. 소속 교사는 7만7605명, 학생은 99만3552명에 달한다. 산하에 있는 교육지원청은 11개다. 그밖에 평생학습관 4곳과 도서관 17곳 등 29개 직속기관을 두고 있다. 올해 예산은 9조1512억원이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2008년 교육감 직선제 도입 이후 서울교육감 중 처음으로 지난 6월 재선에 성공했다.

△1956년 전북 정읍 출생
△1975년 서울중앙고 졸업
△1980년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1992년 연세대 사회학 박사
△1990~2014년 성공회대 교수
△2000년 9월~2002년 2월 참여연대 집행위원회 위원장
△2001년 1월~2002년 2월 성공회대 시민사회복지대학원 원장
△2014년 7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상임의장
△2014년 7월~2018년 6월 제20대 서울교육감
△2018년 7월~ 제21대 서울교육감
[한경과 맛있는 만남] 조희연 서울교육감 "행정은 사회운동과 많이 달랐다…다양한 갈등 조정하는 게 중요하더라"

■조희연 교육감의 단골집 본가칡냉면

양념장 올린 칡냉면과 도톰한 녹두빈대떡 일품


[한경과 맛있는 만남] 조희연 서울교육감 "행정은 사회운동과 많이 달랐다…다양한 갈등 조정하는 게 중요하더라"

서울 오류2동에 있는 본가칡냉면은 ‘성공회대 사랑방’으로 통한다. 23년째 성공회대 옆자리를 지키면서 이 학교 교수와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서다. 역대 총장은 물론 고(故) 신영복 교수도 자주 찾았던 냉면전문점이다. 언니에 이어 가게를 맡고 있는 최규남 사장(51)은 “성공회대 초대 총장을 지낸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냉면을 먹으러 왔다가 옆 테이블에 학생들이 있으면 녹두전을 하나씩 놔주면서 슬쩍 계산하고 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캠퍼스 커플’이던 단골 학생들이 결혼한 뒤 아이와 함께 다시 찾아오는 일도 적지 않다.

사시사철 대표 메뉴인 칡 물냉면(7000원)은 개운하고 새콤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칡가루로 만들어 연갈색을 띠는 쫄깃한 면 위에 살얼음이 낀 육수를 얹어 낸다. 그 위에 달걀, 오이, 양념장, 깻가루 등을 더한다. 최 사장은 “고춧가루도 충북 괴산에서 지인이 농사지은 100% 국산만 고집하고 있다”며 “믿을 수 있는 재료로 깔끔하고 개운한 맛을 내려 노력한다”고 했다. 양념장을 넉넉히 올린 비빔냉면(7500원)도 별미다. 도톰하게 부쳐낸 녹두빈대떡(1만원)이나 속이 꽉 찬 물만두(3000원)는 칡냉면과 ‘찰떡궁합’이다. 손님들이 편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주류는 아예 판매하지 않는다.

김동윤/구은서 기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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