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지사(왼쪽 두 번째)가 5일 제주도청에서 국내 첫 투자개방형 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희룡 제주지사(왼쪽 두 번째)가 5일 제주도청에서 국내 첫 투자개방형 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첫 투자개방형 병원 개설 허가로 외국인 환자 유치 활성화 등 국내 의료산업이 활기를 띨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제주도는 국내 의료계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외국인 전용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의사협회 등이 의료영리화의 신호탄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는 등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내년 초 47병상 규모 개원

녹지국제병원을 운영하는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는 내년 초 병원 문을 열 계획이다. 녹지국제병원은 중국 뤼디그룹이 778억원을 출자해 세운 투자개방형 국제병원이다. 뤼디그룹은 상하이시가 50%를 출자한 국유기업이다. 지난해 자산 146조원 규모로 미국 포천지가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 중 252위를 차지했다.

제주 서귀포시 헬스케어타운에 들어서는 녹지국제병원은 지하 1층 지상 3층 47병상 규모다. 성형외과 피부과 가정의학과 내과 등 4개과 진료를 한다. 의사 9명, 약사 1명을 포함해 의료인력 58명과 코디네이터 같은 행정인력 76명 등 134명이 중국인 환자 등을 치료할 계획이다.

녹지국제병원이 문을 열면 휴양·의료·헬스케어·연구개발(R&D)이 연계된 제주도의 의료복합단지 조성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도는 의료복합단지를 통해 중국인 관광객이 안정적으로 한국을 찾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병원을 찾은 중국인 환자는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여파로 지난해 9만9837명으로, 전년 대비 22% 줄었다.

의료계 관계자는 “국내 법인이 운영하는 병·의원은 아무래도 대외적 정치 이슈 등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중국 자본이 직접 들어와 운영하기 때문에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의료관광 사업의 불확실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문여는 녹지국제병원…'의료 허브' 디딤돌 놓을까
1000억원 넘는 소송비용 등 부담된 듯

녹지국제병원 개설 논의가 구체화된 것은 2015년 박근혜 정부 때부터다. 뤼디그룹이 제주도에 녹지국제병원 개설 승인을 요청했고 같은 해 12월 보건복지부는 사업계획서를 승인했다.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는 지난해 7월 건물을 준공하고 도민 107명을 채용하는 등 운영 준비를 마쳤다. 이후 8월28일 제주도에 개설 허가를 요청했다. 제주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는 네 차례 심의를 거쳐 “외국인 진료 조건을 걸어 허가를 내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거세게 반대하면서 숙의형 공론화조사위원회가 구성됐다. 공론화조사위는 지난 10월 “녹지국제병원을 비영리병원으로 활용하라”며 개설 불허를 권고했다.

그동안 공론화조사위 결정을 수용할 것으로 알려졌던 원희룡 제주지사가 입장을 바꾼 것은 지역주민의 요청 때문이었다. 제주도 관계자는 “지난 3일 간담회 자리에서 병원에 채용된 간호사, 지역 주민 등이 원래 계획대로 병원 문을 열어야 한다고 강력히 요청했다”며 “병원 부지가 국제병원으로 용도가 한정돼 있어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했다.

사업이 무산되면 소송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부담도 컸다. 녹지국제병원은 토지 매입과 건설비 668억원, 운영비 110억원 등 총 778억원(자본금 210억원)을 이미 투자했다. 1년 넘게 병원 문을 열지 못하면서 매달 인건비와 관리비 등으로 8억5000만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제주도는 손해배상 소송 규모만 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공론화조사위원회의 권고대로 녹지국제병원을 공공병원으로 바꾸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최고급 병실 등은 프리미엄 외국인 의료 관광객을 위한 의료·휴양시설 외에는 활용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제주도는 설명했다.

시민단체·의사협회 반발 커져

원 지사가 녹지국제병원이 내국인은 진료하지 못하도록 단서를 단 것은 시민단체 등의 반대를 고려한 결정이다. 국내 보건의료 시스템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송도 등 8개 경제자유구역과 제주에 세울 수 있는 투자개방형 병원은 원칙적으로 내국인도 자유롭게 진료받을 수 있다.

시민단체 등은 강력 반발했다. 도내 30개 단체·정당으로 구성된 의료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는 이날 도청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원희룡 제주지사는 퇴진하라”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성명을 내고 “녹지국제병원이 국내 의료체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의료영리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