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화재가 부른 '통신대란'

'아날로그' 도시된 서울…마포·신촌·용산 등 결제 불능
스마트폰 등 통신기기 불통…배달 안돼 라면으로 때우기도

상인들, 주말 저녁 장사 망쳐…현금 없는 손님은 돌려보내
곳곳 '문 닫습니다' 안내 문구…CCTV 먹통에 불안감 호소도
25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형병원에 화재로 인한 통신장애로 진료가 지연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25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형병원에 화재로 인한 통신장애로 진료가 지연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완전 아날로그네, 아날로그야.”

25일 서울 마포구의 중국 음식점인 ‘충화반점’을 찾은 A씨 일행은 현금을 모아 음식값을 결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현금을 갖고 있지 않던 사람들은 가게 직원이 종이에 적어주는 은행 계좌번호를 받아가야 했다. 일부 손님은 카드 결제가 안 된다는 말을 듣고 돌아섰다.

전날 오전 서울 충정로 KT 아현지사에서 발생한 화재로 카드 결제 단말기 등이 먹통이 되면서 서울의 대표 상권으로 불리는 마포, 신촌, 용산, 이태원 일대 자영업자들은 지난 24일과 25일 주말 영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현금 없이 아무것도 못 해

서울 도심은 마치 1980년대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었다. 24일 이화여대 앞에 있는 ‘카페 문’에선 매일같이 틀어놓던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인터넷에 연결된 스피커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카페 안에선 손님들의 대화 소리만 두런두런 들렸다.

배달 앱(응용프로그램)을 사용해 음식을 시켜 먹을 수도 없었다. 25일 낮 배달 앱으로 치킨을 주문하려던 김모씨(28)는 “앱을 열자 ‘통신망 문제로 카드 결제가 안 될 수도 있다’는 안내문이 떴다”며 “배달시켰다가 결제가 안 될까봐 그냥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고 했다.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것은 물론 현금자동입출금기(ATM)와 버스카드 충전기기가 먹통인 편의점도 많았다. 신촌의 한 편의점 출입문엔 ‘카드 결제 불가’ ‘현금 결제, 계좌이체만 가능’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현금을 인출하려는 사람이 몰려왔지만 ATM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모두 돌아갔다.

휴대폰이 먹통이 돼 불안을 느꼈다는 시민도 많았다. 직장인 고석훈 씨(31)는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톡은 물론, 전화를 걸거나 받을 수도 없어 너무 불편했다”며 “오늘(25일) 시간과 장소를 정해 만나기로 약속한 친구와도 연락이 안 됐다”고 말했다.

24일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과 신촌역 인근 공중전화 부스 앞엔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고등학생 김모군(18)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중전화를 이용해 본다”며 “인근 편의점에선 모두 ‘동전이 부족하다’고 해 지폐를 잔돈으로 바꿔 오는 데에도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주말 장사 완전히 망쳤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은 도심에서 주말 장사를 하는 자영업자였다. 결제를 놓고 손님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데 지쳐 문을 닫은 가게도 많았다. 홍익대 정문 앞에 있는 한 식당은 출입문에 ‘인터넷 장애로 일찍 닫습니다(결제불가)’라는 안내문을 붙여놓고 휴업했다. 용산구에서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B씨는 “매출이 가장 많은 주말 장사를 망쳐 손해가 막심하다”고 하소연했다. 상품 특성상 비교적 가격이 높은 옷가게도 큰 타격을 입었다. 공덕역 지하상가에서 유명 골프브랜드 제품을 할인해서 파는 C씨는 “요즘 10만원 이상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드물어 어제(24일)는 거의 개점휴업 상태였다”며 “오늘도 결제가 오락가락해 제대로 영업하지 못했다”고 푸념했다. 이화여대 정문 앞의 한 옷가게도 오전에 옷을 다 골라놓고 오후에 찾아온 손님을 그냥 돌려보냈다고 했다.

음식점도 사정은 비슷했다. 신선설농탕 신촌점의 한 직원은 “손님에게 현금 결제나 계좌이체가 가능한지 미리 물어보고 있다”며 “주말에 찾아온 단체 손님 몇 팀이 발걸음을 돌렸다”고 말했다.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장사하는 주점에선 폐쇄회로TV(CCTV) 장치가 먹통이 됐다. KT에서 운영하는 보안서비스 ‘텔레캅’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텔레캅의 도어록 감시장치, CCTV 등이 멈춘 것이다.

이태원의 한 주점 매니저는 “거의 대부분 카드를 들고 다니는 외국인 손님에게 술값을 받는 데만 20~30분씩 걸렸다”며 “한국 화폐단위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도 현금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전했다.

조아란/김남영/주은진 기자 ar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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