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소방당국 관계자들이 25일 서울 충정로 KT 아현지사에서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현장감식을 벌이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경찰과 소방당국 관계자들이 25일 서울 충정로 KT 아현지사에서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현장감식을 벌이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지난 24일 발생한 KT 서울 아현지사 지하 통신관로(통신구) 화재로 서울 시내 관할지역 통신망이 먹통이 됐다. 이날 불은 오전 11시12분께 나 소방관 200명, 소방차 57대가 투입돼 10시간여 만인 오후 9시26분께 진화됐다.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완전 복구까진 1주일가량 걸릴 전망이다.

경찰·국방부 일부 통신망까지 마비

통신관 79m 화재에 마비된 서울 도심…백업 없는 '초연결사회'
경찰과 소방당국, KT, 한국전력이 25일 KT 아현지사 화재에 대해 1차 합동감식한 결과 건물 지하 1층 길이 150m 통신구(통신케이블 부설용 지하도)에서 화재가 발생해 통신케이블 79m가량이 소실된 것을 확인했다. 이 건물은 지하 1층~지상 5층(연면적 8881㎡) 규모로 통신구에는 전화선 16만8000회선과 광케이블 220조(전선세트 단위)가 설치돼 있다. 당국은 26일 오전 10시께 2차 정밀합동감식을 벌여 정확한 화재 원인을 규명할 계획이다.

KT 측은 25일 “(오후 6시 현재) 인터넷 회선은 97%, 무선 통신망은 63% 복구했다”고 발표했다. 불에 탄 통신케이블 등을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통신망이 완전히 복구되기까지는 1주일가량 걸릴 전망이다.

지하 통신관로에 소화기만 비치돼 있고 스프링클러는 없는 등 설비관리가 허술해 피해가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법상 통신사업용 지하구는 길이 500m 이상일 때만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길이 150m인 KT 아현지사 통신관로에는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의무가 없다.

복구작업이 늦어지면서 경찰, 국방부 등 국가기관 통신까지 중단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화재로 서대문·마포·중구 일대 통신이 끊기자 서울 남대문경찰서, 용산경찰서, 서대문경찰서, 마포경찰서 네 곳의 전화와 112시스템에 장애가 생겼다. 용산·서대문·마포 경찰서 112상황실 경찰관들은 서울지방경찰청으로 집결해 112신고 업무를 처리했다.

남대문경찰서를 시작으로 이날 오후 용산경찰서와 서대문경찰서 112시스템이 복구되긴 했지만 통신망이 연결된 뒤에도 전화가 자주 끊기고, 비상사이렌이 뜬금없이 울리는 등 오작동했다. 관할 파출소와 지구대는 여전히 통신마비를 겪었다. 이태원파출소에는 ‘금일 전화 사용과 분실물 접수가 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화재 당일인 24일에는 경찰의 상황 조회 휴대폰인 ‘폴리폰’도 마비됐다. 폴리폰은 경찰이 신고 현장에서 피의자 신원, 사건, 수배, 교통 상황 등을 곧바로 조회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다. 폴리폰을 이용하지 못하면 피의자를 경찰서로 인계한 뒤 내부 시스템을 통해 조회해야 하는 등 업무 처리가 길어진다.

이날 서울 용산 국방부는 육군본부·공군본부 등 직통 연결망을 제외한 내외부 통신망이 끊겼다. 국방부 관계자는 “직통 연결망은 별도 통신망을 이용하고 있어 화재 영향을 받지 않았고, 인트라넷도 문제 없이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병원도 진료 지연

보건·의료 서비스 거점인 대학병원도 업무에 어려움을 겪었다.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는 KT 화재가 초래한 전산장애 때문에 진료가 지연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었다.

외부 통신망과 인터넷망이 끊기면서 인터넷 홈페이지 접속이 막히고, 응급실에서도 외부 전화를 수신할 수 없었다. 세브란스병원의 한 의사는 “응급 상황에선 소방대원이 구급차로 환자를 이송하면서 응급실 관계자와 연락을 취해야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동 서울적십자병원도 외부 통신망이 끊겼다.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은 오전까지 내외부 통신망이 모두 끊겼다가 오후 1시께 내부 전화만 복구됐다.

병원 관계자들은 특히 노인 환자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최선섭 서울적십자병원 원무담당자는 “젊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병원을 찾아보고 연락하지만 노인들은 병원 응급실에 곧장 전화하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이수빈/조아란/이승우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