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밀리듯 나갔다가 '문화 차이'에 결국 'U턴'
“일이 끝나고 맥주 한잔하고 싶은 날, 같이 갈 사람이 없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일본에서 함께 일한 동료들은 일이 끝나자마자 흩어져 버려 저녁 한 번 먹자는 말을 꺼내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일본 회사에 다니다 올해 국내로 돌아온 서모씨(29)는 일본 직장 생활에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점으로 ‘외로움’과 ‘문화 차이’를 꼽았다. 서씨는 국내 기업에서 번번이 낙방한 끝에 지난해 일본 유명 제약회사에 입사했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강한 일본 문화와 오랜 타지 생활이 주는 정서적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문화적 차이로 힘들었던 상황에서 원하는 부서로 이동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고민 끝에 국내 복귀를 결정했다”고 털어놨다.

일본 취업 열풍…국내 U턴 취업자도 등장

극심한 국내 고용 한파에 일본행을 택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취업 열풍에 휩쓸려 무작정 일본 기업에 취직한 뒤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사람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철저한 사전 준비 없이는 일본 취업이 항상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일본 취업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일본 기업들이 구인난을 겪으면서 외국인에게 취업문을 넓히고 있어서다. 일본 후생노동성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 취업한 한국인 수는 5만5926명으로 집계됐다. 5년 전인 2012년(3만1780명)에 비해 76% 늘었다. 최근 3년 동안 10%대 증가했다.정부 지원사업으로 일본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해외연수사업 등 고용노동부 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얻은 해외취업자는 총 5118명. 이중 일본에서 직장을 찾는 숫자가 1427명(27.9%)으로 가장 많았다. 2013년 이후 매년 증가 추세다.

일본에 관심을 갖는 구직자가 많아지면서 일본 취업설명회도 인기다. 지난 5일과 7일 부산과 서울에서 열린 ‘2018 일본취업박람회’에는 소프트뱅크, 닛산자동차 등 일본 기업 112곳이 참가했다. 일본 기업이 직접 대학을 방문하는 취업설명회도 학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서울대에서 일본 미즈호금융그룹의 취업설명회가 열렸다. 고려대, 서강대 등에서도 일본 기업의 취업설명회가 마련됐다.

개인주의·경직성…‘문화 차이’ 극복 어려워

일본 취업 열기가 뜨거워진 만큼 현지 부적응 등을 이유로 국내 ‘U턴’을 선택하는 취업자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일본 대기업에 입사했던 김모씨(26)는 문화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1년여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의 폐쇄적 문화와 융통성 없는 업무 환경에 지쳐서다. 그는 “일본 기업은 한국 기업에 비해 융통성이 떨어지는 편”이라며 “타부서 사람들과 협력하는 과정에서 일부 팀원이 끝까지 원칙만 고수해 답답했던 적이 많다”고 토로했다.

일상생활에서 느낀 혐한(嫌韓) 분위기에 마음고생을 하는 청년들도 있다. 도쿄에서 거주 중인 박모씨(28)는 집 근처 쇼핑몰에 갔다가 종업원에게 홀대를 당했다. 종업원은 박 씨가 신발을 가져다 달라고 요청하자 기다리라는 말만 한 뒤 무시했다. 불친절했던 직원은 다른 일본인 손님에게는 웃으며 친절하게 응대했다. 그는 “주변에서도 한국인이라서 무시당한 것 같다는 얘기가 종종 들린다”고 아쉬워했다.

일본 기업에서 경력을 쌓아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는 불만도 나왔다. 일본 통신업체에서 근무하는 임모씨(30)는 한국 경력을 선호하는 국내 기업의 분위기 탓에 이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기업에서 임 씨와 비슷한 경력을 쌓은 친구들이 이직하는 모습을 보면서 박탈감은 더욱 커졌다. 임씨는 “취업난을 피해 갔는데 또 다른 취업난에 직면한 것 같다”고 호소했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언어 능력이 중요하거나 일본과 밀접한 직무가 아니라면 한국식 기업 문화에 익숙한 국내 경력직을 선호하는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단기 취업보다는 10년 이상 목표로 해야 부작용 줄어”

일본 기업들의 대졸 초임이 한국에 비해 높지 않다는 점 역시 취업자들의 고민거리다. 일본 기업은 주로 초임이 낮은 대신 근속 연수가 길어질수록 임금 상승폭이 큰 편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25~29세 남성 노동자의 평균 월급은 24만8100엔(약 248만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50~54세 남성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42만4000엔(약424만원)으로 크게 올랐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일본 취업을 접근할 경우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창민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는 “일본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장기근로자를 뽑는 경향이 남아있어 한국보다 대졸자 초임이 낮은 편”이라며 “10년 이상 일본 기업에서 근무해야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 간 임금역전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국내 취업난을 피해 무작정 일본 기업을 선택하는 도피성 취업은 ‘필패’라고 지적했다. 그는 “오랫동안 일본 취업을 준비한 사람도 막상 현지에 도착하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단기 취업보다는 최소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커리어를 목표로 해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장현주/김소현/정연일 기자 blackse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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