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을 겪고 있는 산부인과 전문병원인 제일병원이 이사회 구성권 매각 등을 통해 경영 정상화에 나선다. 업계에서는 국내 산부인과 의료기술을 주도해온 의료기관으로서의 가치, 주변에 종합병원이 많지 않은 지리적 이점 등을 고려하면 이른 시일 안에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내다봤다.

21일 제일병원에 따르면 병원 경영진은 자금 유동성을 개선하기 위해 외부기관 두 곳과 이사회 구성권 매각 등을 논의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병원 운영을 위해 필요한 자금 규모, 자금 투입 방식 등을 협의하고 있다”며 “진료 가능한 시기를 묻는 전화가 빗발칠 정도로 정상화를 기다리는 환자가 많고 실력 좋은 의료진이 대부분 남아있기 때문에 조만간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묵정동에 있는 제일병원은 1963년 문을 연 국내 첫 산부인과 전문병원이다. 제일병원 창업자는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조카인 고 이동희 이사장이다. 1996년 이 이사장이 폐암으로 사망하면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경영을 맡았다. 제일병원은 2005년 삼성그룹 계열 병원에서 분리됐고 이름도 삼성제일병원에서 제일병원으로 바뀌었다.

삼성그룹에서 독립한 뒤 저출산 여파까지 겹치면서 제일병원은 오랜 기간 경영난에 시달렸다. 분만 건수는 2014년 5490건, 2015년 5294건, 2016년 4496건으로 매년 줄었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 올해 초 직원 임금을 삭감했다. 노동조합이 이에 반발해 지난 6월 전면 파업에 들어가면서 경영상황이 급격히 악화됐다. 입원실과 분만실은 폐쇄됐고 지금은 외래 환자만 진료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일반 직원은 물론 의사 임금까지 지급하지 못했다. 병원노조 등에 따르면 제일병원 부채는 은행 빚 900억원을 포함해 1280억원이다.

상황이 악화되자 경영진은 이사회 구성권 매각 등을 통해 자금 마련에 나섰다. 국내 의료법인은 의료법에 따라 외부 투자를 받거나 인수합병(M&A)을 할 수 없어 병원 운영권을 넘기는 방식으로 매각이 이뤄진다. 업계 관계자는 “제일병원은 여성병원의 상징으로 국내 산부인과 의학기술을 선도해왔다”며 “노조 문제 등으로 일부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단기 자금 부족 때문에 무너지기에는 아까운 병원이라는 인식이 강해 곧 정상화될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