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 6~8기 출신들은 사법부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드러진 자취를 남겼다. 법조인 출신 첫 대통령을 배출했고, 6명의 대법관과 3명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나왔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와 대학 총장, 사회 운동가로 변신한 인물도 있다. 이들 6~8기(1974~1976년 합격)는 법조인 생활 초기에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체제가 지나고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던 때였다. 시법시험 합격자가 한 해 60명에 불과하던 때라 법관이나 검사 임용이 어렵지 않았으나 이들은 법원과 검찰의 울타리에만 머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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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검사 임관 실패가 ‘인생역전’ 계기로

연수원 6기 수료생 60명은 대부분 판사와 검사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도입되면서 매년 1500명 이상의 변호사가 쏟아지는 요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규모여서 임관이 어렵지 않았다. 4선의 바른미래당 박주선 의원도 검사로 출발해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박 의원은 사시 16회를 수석으로 합격했다. 당시 차석은 국내 민법 분야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양창수 전 대법관(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었다. 대학 3학년때 사시에 합격한 이사철 변호사는 검찰 출신으로 오랜기간 한나라당 대변인(2선 의원)을 지냈다.

검찰 출신 가운데는 특수통 검사로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하고 노무현 정부 법무부 장관을 지낸 김성호 전 국가정보원장이 유명하다. 민형기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지난해 4월 롯데그룹 준법경영을 총괄하는 컴플라이언스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선임돼 주목받았다. 1999년 옷로비 의혹사건 때 특별검사를 맡았던 최병모 법무법인 양재 대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장(2002년)을 지낸 인권 변호사다.

6기 대부분 판·검사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소수정예(60명)였기 때문에 임관도 쉬웠다. 판·검사가 되지 못하면 ‘실패’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변호사로 법조 인생을 시작해 대형 법률회사(로펌)의 성장 신화를 써낸 이들도 있다.

변호사로 법조 인생을 시작해 대형 법률회사(로펌)의 성장 신화를 써낸 이들도 있다. 정계성 김앤장 대표는 연수원(6기)을 수석졸업하고도 1971년 ‘신민당사 농성사건’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판사 임관에 실패했다. 결국 김앤장 법률사무소 창립 멤버로 합류해 30년간 금융과 증권, 기업 인수합병(M&A) 자문 부문을 이끌며 회사를 국내 1등 로펌에 올려놓은 주역이 됐다. 김용갑 변호사도 육군 법무관 복무 후 곧바로 김앤장에 입사, 지금까지 김앤장 일본그룹장을 맡고 있다. 우창록 율촌 대표 또한 판검사 임관 대신 김앤장행(行)을 선택했다. 1997년 율촌을 설립하고 기업법무 및 조세 금융 공정거래 송무 등 분야에 특화된 국내 5대 로펌으로 키워냈다.

한 원로 변호사는 “많은 법조인 부인들이 대법관 정도하면 퇴임후 돈 걱정 없이 살 줄 알았는데, 실상이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며 “당시 검사나 판사로 임관되지 못한 변호사 출신 남편 동기들이 요즘 훨씬 돈을 잘 번다는 사실을 알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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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시절 법조계 장악한 7기

연수원 7기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던 노 전 대통령은 두 번의 국회의원과 해양수산부 장관 등을 거쳐 2003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법률가로서 그의 업적에 대해 연수원 동기 한 명은 “1988년 5공 청문회 당시 그가 보여준 반대신문은 매우 탁월했다”며 “법조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 등을 상대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일약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7기에서도 김능환 안대희 차한성 전 대법관, 조대현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 등 고위직이 많이 배출됐다. 정상명 전 검찰총장도 연수원 7기다. 검찰 출신으로 대검 중수부장을 지낸 안 전 대법관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총리 후보에도 올랐다.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지만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재학 중에 연수원에 입소하면서 전공 필수과목을 하나 이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현재 율촌 고문인 김능환 전 대법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장 퇴임 후 채소가게 편의점 등에서 일해 ‘편의점 아저씨’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계 인물 중에는 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4선)이 있다.

‘미스터 쓴소리’로 불렸던 조순형 전 민주당 의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노 대통령의 동기인 사시 17회(연수원 7기)가 법조계를 장악했다”며 “학벌보다 더 공고한 ‘시벌(試閥)’”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국제중재 전문가도 7기에 몰려 있다. 이호원 대한상사중재원장은 민사소송과 중재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다. 판사 시절 외환위기 이후 직무유기 혐의로 구속된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에게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해 유명해졌다. 신희택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장 겸 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센터 의장은 27년간 김앤장에서 통상과 중재 전문가로 활약했고 최근 10년간은 서울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했다. 신 의장은 고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줄곧 ‘수석 졸업’한 수재로 알려져 있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 사법연수원을 수석 졸업한 데 이어 미국 예일대 로스쿨도 최우등 졸업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2013년(일본 기업과 스페인 정부)과 2016년(네덜란드 투자자와 베네수엘라)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의 중재인으로 선정됐다.

대기업 CEO, 대학 총장 나온 8기

8기에는 김영란 전 대법관의 남편 강지원 변호사가 있다. 그는 사시 18회를 수석으로 합격했고 행정고시까지 패스했다. 잘나가는 검사였지만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접하면서 인생 진로가 180도 바뀌었다. 검사를 관두고 청소년보호위원장, 자살예방대책추진위원장, 교육개혁을 위한 ‘타고난적성찾기국민실천본부’ 상임대표, 장애인을 위한 ‘푸르메재단’ 대표 등을 역임했다.

검사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대기업 CEO와 대학 총장도 나왔다. 홍석조 BGF그룹 회장은 광주고검장을 끝으로 2006년 검찰에서 나와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경영에 뛰어들었다. 홍 회장은 2012년 일본 패밀리마트와의 제휴를 끊고, 독자 브랜드 ‘CU’를 출범해 국내 편의점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그는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의 친동생이다.

법무부 차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낸 김희옥 변호사는 학계에서도 인정받아 2011~2015년 동국대 총장으로 일했다. 연수원 8기에는 정치적 소신을 뚜렷하게 밝힌 인물도 있다. 진보 쪽에는 노무현 정부 때 법무부 장관을 맡아 검찰 개혁을 이끈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6선)이 유명하다. 보수 쪽에는 “문재인 대통령은 공산주의자”라고 발언해 민형사 소송을 당한 서울남부지검장 출신인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있다. 또 신영철 전 대법관은 2008년 서울중앙지법원장 재직시절 촛불집회 재판을 신속히 처리하도록 지침을 내리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