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가 산업현장의 호소를 감안해 연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기로 하면서 노동계의 반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10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전국노동자대회에는 현 정부 들어 최대 규모인 약 7만 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8일에는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민주노총을 직접 찾아 양 노총의 대정부 공동투쟁을 선언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탄력근로제 확대를 계기로 그동안 줄곧 밀월관계를 유지했던 정부와 노동계가 노무현 정부 때처럼 등을 돌리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막무가내 勞에 거리 두는 政…2003년 닮은꼴?
동지에서 적으로…2003년 노·정관계

2003년 2월25일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도 하기 전인 2월13일 당선자 신분으로 민주노총부터 찾았다. 대선 과정에서 자신을 지지해준 노동계에 대한 애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행보였다. 당시 공약도 비정규직 차별 금지 및 고용 안정,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노동3권 보장, 공무원노조 합법화 등 노동계 요구를 대폭 반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취임 직후 상황은 예상과 달리 흘러갔다. 정부 출범 직후 철도노조는 해고자 복직과 민영화 중단을 요구하며, 화물연대는 운송료 현실화 등을 외치며 일제히 파업을 벌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부는 노동계 요구를 들어주는 선에서 대응했다. 그 결과 파업은 다소 잠잠해지는 듯했으나 2~3개월 후 철도노조와 화물연대가 2차 파업에 나서면서 정부는 강경대응 모드로 돌아섰다.

이 밖에도 전국 단위 교육행정시스템(NEIS) 도입을 놓고 “인권·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다”고 반발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의 전선이 형성됐다. 분야별로 국한됐던 노·정 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달은 건 2006년 11월 기간제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2007년 4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면서다. 이후 틀어진 관계를 정부는 막판까지 회복하지 못했다. 문 대통령도 2011년 쓴 책 《운명》에서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적었다.

“노·정 관계는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진 면이 있었다. 노동계가 참여정부에 대한 기대 때문에 처음부터 서두르거나 과욕을 부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는 노동계의 높은 기대를 참여정부가 감당 못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노동 분야는 참여정부의 개혁을 촉진한 게 아니라 거꾸로 개혁 역량을 손상시킨 측면이 크다고 생각한다.”

탄력근로 확대 ‘제2 화물연대’ 사태 되나

문재인 정부도 노동계의 열렬한 지지 속에 출범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첫 행보로 인천국제공항을 찾은 것도 노동계 숙원 사업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서였다. 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대폭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친노동 정책에 속도를 냈다. 대통령과 양 노총 위원장의 만남도 이뤄졌다.

원만했던 노·정 관계에 균열 조짐이 보인 것은 지난 5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6월 근로시간 단축 시행 6개월 유예를 발표하면서다. 이때까지만 해도 비판 수준이었던 노동계 반발은 정부·여당의 탄력근로제 확대 추진을 계기로 ‘대정부 투쟁’으로 수위를 높였다.

청와대와 여당도 노동계에 각을 세웠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민주노총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고 했고, 여당 지도부는 총파업을 강행하려는 양대 노총을 향해 우려를 쏟아냈다. 그러자 민주노총은 비서실장을 향해 “어이가 없다. 무지하고 오만한 발언”이라고 정면 반발했고, 여당 지도부를 향해선 “교묘한 물타기 정치 공세”라고 공격했다.

민주노총의 강력 반발에 한국노총까지 가세하면서 갈등은 한층 고조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0일 노동자대회에 이어 오는 21일 총파업을, 한국노총도 17일 전국노동자대회를 예고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