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알처럼 적어둔 정답목록이 결정적 증거…'커닝페이퍼'도 만들어
출제 교사도 "유출 의심"…끝내 혐의 부인해 법정공방 예고
암기장·포스트잇…쌍둥이 스스로 만든 정답메모에 '발목'
문제유출 의혹을 받은 서울 숙명여고의 전임 교무부장 A(53·구속)씨와 그의 쌍둥이 딸이 12일 모두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들은 두 달여에 걸친 경찰 수사 내내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쌍둥이 스스로 만들어뒀던 수많은 '메모'가 결국 자신들의 혐의 사실을 입증하는 부메랑으로 돌아갔다.

이날 서울 수서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이 A씨 부녀의 문제유출 혐의를 입증할 핵심 증거로 꼽은 것은 '암기장'과 '접착식 메모지(포스트잇)', '시험지에 적힌 메모' 등 총 세 가지다.

경찰 설명을 종합하면, 쌍둥이는 A씨가 빼 온 문제와 정답을 암기장에 적어두고, 이를 포스트잇에 옮겨 적어 만든 '컨닝페이퍼'를 시험 날 가져가서는, 외운 정답 목록을 빠르게 시험지에 옮겨적는 식으로 시험을 본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이과에 재학 중인 동생이 만든 암기장에 2학년 1학기 기말고사의 모든 과목 정답이 쭉 적혀있었던 것이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했다.

암기장에는 정답 목록과 함께 이 목록을 더 잘 외우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키워드도 적혀 있었다.

예를 들어 한 정답이 'A'라는 개념이라면, 이를 쉽게 외우기 위해 아래쪽에 해당 개념을 연상시키는 일상생활 속 물건의 이름을 적어두는 식이었다.

경찰은 "재판이 남아있어 지금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암기장의 전후 맥락을 봤을 때) 정답 목록은 시험을 치르기 이전에 적힌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런 정황을 보여주는 특징점이 (암기장에) 여럿 있다"고 설명했다.
암기장·포스트잇…쌍둥이 스스로 만든 정답메모에 '발목'
컨닝페이퍼라는 의심을 받는 포스트잇에도 객관식과 주관식 정답이 정확히 적혀 있었다.

해당 포스트잇은 가로 10㎝·세로 3㎝ 안팎의 작은 크기로 어른 손바닥보다 작았다.

경찰은 작은 종이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정답을 적어둔 것을 봤을 때 컨닝페이퍼로 의심된다고 설명했다.

쌍둥이가 실제 시험을 치렀던 시험지에는 포스트잇보다도 더 작은 글씨로 정답 목록을 적어둔 흔적이 발견됐다.

객관식 정답 20∼30개를 빼곡히 적어둔 것의 크기가 가로·세로 2∼3㎝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글씨였다.

쌍둥이는 "시험을 치른 후 가채점하려고 적어둔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경찰은 시험 감독관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작게 써둔 것으로 판단했다.

물리 과목의 경우 계산이 필요한 문제 근처에서 정답 목록만 발견되고, 문제를 푼 흔적은 전혀 없었다.

화학시험 서술형 문제의 경우 풀이와 정답을 모두 적는 문제가 있었는데, 동생 은 정답은 '10:11'이라고 적었지만 풀이과정에서는 이 답을 도출하지 못했다.

이후 '10:11'이라는 답은 결재가 잘못 올라갔던 '정정 전 정답'으로 밝혀졌다.
암기장·포스트잇…쌍둥이 스스로 만든 정답메모에 '발목'
이런 정황들 때문에 시험문제를 낸 숙명여고의 다른 교사 중 일부도 경찰 조사에서 '문제유출이 의심된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전문가 자격으로 참고인 조사를 받은 다른 학교의 교사도 '풀이과정을 보니 정답 도출이 불가능하다'며 유출이 맞다는 취지로 의견을 냈다"고 전했다.

이밖에도 쌍둥이 학생들이 전교 1등을 했던 올해 1학기에 학원에서는 중간 등급의 반에 머물렀던 점, 정기고사와 달리 모의고사 성적은 하위권으로 곤두박질쳤던 점, 수사가 시작된 후 2학기 중간고사에서 성적이 다시 떨어진 점 등이 문제유출 정황을 입증했다.

부친 A씨의 경우 시험지가 교무실 금고에 보관된 날 초과근무 대장에 기록하지 않고 야근한 점,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자택 컴퓨터를 교체한 점 등이 혐의를 구체화했다.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은 "경찰이 확인한 문제유출 정황 증거가 20여개"라며 혐의 입증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6일 A씨 구속영장을 심사한 서울중앙지법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도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이 있고,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 및 수사의 경과 등에 비춰 볼 때 구속의 상당성이 인정된다"며 A씨에 대한 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나 A씨 부녀는 A씨가 구속된 후에도 여전히 문제유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들은 경찰이 문제유출에 대한 정황 증거만 제시할 뿐, 시험지 복사본이나 사진 촬영본처럼 실제로 문제가 유출된 장면을 포착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며 결백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숙명여고 문제유출 사건의 최종 결론은 치열한 법정 공방을 거쳐 법원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경찰은 "피의자들이 재판에 대비할 가능성이 있어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휴대전화에서 확인된 증거가 여럿 더 있다"고 말해 추가로 제시할 결정적 증거가 있음을 내비쳤다.
암기장·포스트잇…쌍둥이 스스로 만든 정답메모에 '발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