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에서 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이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해 감식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9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에서 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이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해 감식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내가 반찬도 해줬는데 죽은 사람들 불쌍해서 어떡하나.”

9일 불이 난 고시원에서 가까스로 대피한 한 중년 여성은 당시 상황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오열하며 주저앉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이날 새벽,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에서 치솟은 화마가 최소 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고시원에서 화재가 잇따르고 있지만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없는 사각지대가 여전히 많아 인재(人災)가 계속되고 있다.

화재 진압이 끝난 고시원 내부에는 철골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불은 오전 5시께 건물 3층에서 발생해 2시간 만인 오전 7시께 진압됐다. 고시원 3층과 옥탑방에는 총 27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길이 제때 잡히지 않으면서 18명이 부상을 입고 이 가운데 7명이 사망했다. 이들 대부분은 40~60대 일용직 근로자였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252건에 달한다. 한 번 불이 나면 진압이 쉽지 않아 대형 화재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 약 5㎡(1.5평)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좁은 복도를 끼고 있는 구조라 탈출구가 협소하기 때문이다. 이날 발생한 화재에 대해 권혁민 종로소방서장은 “3층 출입구 인근에서 불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출입구가 봉쇄돼 (대피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재 발생 초기에 불을 꺼야 했던 스프링클러는 아예 없었다. 2009년 7월 개정된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고시원 등 숙박을 제공하는 형태의 영업장은 스프링클러 등의 소방설비를 갖춰야 한다. 하지만 1982년에 지어져 이듬해 사용 승인이 난 이 건물에 고시원이 들어선 것은 2007년부터다. 해당 법률 시행 이전부터 운영돼온 업소는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없다.

불이 난 사실을 알려주는 화재경보기는 고장 난 상태였다. 두 달째 고시원 2층에 거주하고 있다는 정모씨(40)는 “화재 경보는 전혀 못 들었다”며 “‘불이야’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뛰어나왔다”고 전했다. 불이 났을 때 몸에 밧줄을 매고 땅으로 내려올 수 있게 돼 있는 완강기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아무도 이용하지 못했다.

경찰은 전열기 문제로 불이 났을 개연성이 크다고 보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서울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이 고시원 301호 거주자 A씨(72)는 “오늘 새벽 일어나 전열기 전원을 켜고 화장실에 다녀온 이후 불이 나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10일 가스안전공사, 전기안전공사 등 관계기관과 합동 감식을 할 계획이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