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특별재판부 설치를 두고 정치권에서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현재 발의된 특별법의 빈틈이 워낙 커서 실제 재판에 적용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별법 제정이 무산될 경우 재판을 맡을 중앙지방법원도 9일 1심 재판을 진행하기 위한 자체 방안을 발표했다. 검찰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구속) 기소가 임박한 만큼 사건을 맡을 재판부가 당장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별재판부法' 곳곳 허점…법원, 자체 재판 준비
재판 대상 범위 불분명

법조계에선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기간 중의 사법농단 의혹사건 재판을 위한 특별형사절차에 관한 법률안(특별재판부 설치법)’이 크게 네 가지 이유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먼저 재판 대상의 범위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법안에서는 법원 내 국제인권법연구회 모임 동향 파악 및 개입 등 모두 7개의 구체적인 사건을 나열한 뒤 이들 사건을 수사하면서 범죄 사실이 발견돼 기소된 사건까지 포함하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사건이 아닌데도 특별재판부가 재판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현재 검찰은 수십 명의 특수부 검사를 투입해 사건을 수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의 전례를 비춰 보면 이른바 ‘별건’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별재판부가 구성되더라도 임 전 차장을 비롯한 피고인들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할 경우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렵다. 위헌법률심판이 개시되면 헌재법에 따라 결론이 날 때까지 재판은 중지된다. 특별법이 1심 재판을 석 달 안에 끝내도록 명시한 것도 문제로 꼽힌다. 부실재판 우려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이번 사건은 법관만 80명 이상이 소환됐고 대부분의 증거가 법관의 증언”이라며 “불러야 할 증인이 이렇게 많다면 1심을 3개월 만에 끝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3심이 불가능하게 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건은 특별재판부가 필요할 만큼 관심이 증폭됐기 때문에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하지만 특별법에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은 특별재판부의 법관이 될 수 없다. 양 전 대법원장이 뽑은 대법관은 전체 대법관 13명 가운데 8명에 달한다. 고위 법관 출신인 대형 로펌 변호사는 “특별법의 맹점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입법이 이뤄지면 사법 신뢰가 오히려 훼손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 재판이 가능한 합의부는 10곳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날 임 전 차장에 대한 검찰 기소가 다가오면서 민사재판을 담당하던 판사 9명으로 형사합의 재판부 3개를 더 꾸렸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 없는 재판부를 늘려 ‘재판부 기피신청’ 등이 있을 경우 배당이 가능한 경우의 수를 늘려놓겠다는 의도다. 현재 기존 형사합의부 재판장 13명 중 6명이 법원행정처 근무 경력이 있거나 ‘사법농단 의혹’ 사건의 피해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앞으로 닷새 뒤에는 임 전 차장을 기소해야 한다. 법원 관계자는 “개별 사건의 기소 내용을 살펴본 뒤 사건이 배당되면 문제의 소지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재판부를 배제하고 배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 전 차장이 기소될 경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이 없는 7개 재판부와 증설된 3개 합의부를 포함한 10개 재판부 중 한 곳이 임 전 차장 사건을 맡게 될 전망이다.

고윤상/신연수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