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는 지난 7일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왼쪽)에게 대한적십자사 박애장 금장을 전달했다. 대한적십자 박애장 금장은 인명을 구제하거나 안전을 도모하는 데 탁월한 공로가 있는 자에게 수여된다. 이 교수는 열악한 국내 외상 진료체계 개선에 헌신해 왔다. 김훈동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오른쪽)이 이 교수에게 금장을 전달한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온다는 이유로 경기도 공무원으로부터 응급헬기 운용에 주의를 요구받은 데 울분을 토한 외상외과 전문의 이국종 아주대 교수에게 22일 공개 사과했다.이 지사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소음 민원 때문에 생명을 다루는 응급헬기 이착륙에 딴지 거는 공무원이라니…더구나 신임지사 핑계까지. 이재명의 '생명안전중시' 도정철학을 이해 못 하거나 정신 못 차린 것"이라고 적었다.이어 "(이 교수에게) 사과드리며 엄정조사해 재발을 막겠습니다"라고 밝혔다.앞서 이 교수는 이날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최근 응급헬기 운용 중 한 항공대원으로부터 응급헬기의 소음으로 인한 민원이 자주 접수된다는 이유로 경기도 소방 공무원이 주의를 요구한 사실을 전해 들은 일화를 공개했다.이 교수는 "(소음을 줄이려면) 어느 한 방향으로만 들어와야 하는데 그때 터뷸런스나 강풍에 휘말리게 되면 추락해서 사망할 수밖에 없다"며 "(소음을 줄이라는 요구는) 저희 죽으라는 소리다"라고 울분을 터뜨렸다.그러면서 "(경기도 소방 공무원 등이) 이번에 신임 누가 선출됐는데 그분은 이런 걸(민원 야기) 싫어하신다 등 윗선의 핑계를 댄다"고 덧붙였다./연합뉴스
‘봄이 싫었다.’ 800쪽이 넘는 두 권짜리 책의 첫 문장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계절이 싫은 이유는 노동현장에 활기가 돌기 시작해서다. 활기는 사고를 불렀다. ‘떨어지고 부딪혀 찢어지고 으깨진 몸들’이 병원에 실려왔다. 그득한 피비린내 가운데서의 17년을 기록했다. 외상외과 전문의 이국종 아주대 교수가 쓴 《골든아워 1, 2》는 무겁고 진지하다. 날이 섰고 적나라하다.이 책이 이달 첫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0위에 올랐다. 출간 2주 만에 1, 2권이 3만 부씩 팔려나갔다. 책의 두께엔 시간이 담겼다. 집필에만 5년이 걸렸다. 김수진 흐름출판 편집자에 따르면 초고가 출판사에 도착한 뒤에도 책이 나오기까지 2년 가까이의 시간이 더 걸렸다고 한다. 이 교수는 거듭 수정하고 내용을 추가했다. 긴 시간의 기록인 만큼 등장인물이 많았고 사건들의 시기와 순서도 다시 확인해야 했다.가벼움이 미덕인 요즘 이 묵직한 책의 무엇이 독자들을 끌어당긴 것일까. 이 교수는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과 총격을 받은 북한 귀순병을 살려낸 의사로 유명하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실제 모델로도 잘 알려져 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 외과계 의사가 많다. 생명과 직결돼 있고 수술이 주는 긴박함이 극적 요소를 더해줘서다.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외과는 전공의들에게 인기가 없다. 외과계 교수들이 전공의 지원자를 직접 모시러 다닐 정도다. 헬기를 타고 응급 출동을 하고 연구실 침대에서 쪽잠을 자야 하는 외상외과는 오죽할까. 환자들이 주로 저소득 노동자들인 외상외과의 운영난과 인력난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이 교수가 원하는 것은 명성이 아니다. 오로지 하나. 책에서 ‘헛된 무지개’라고 표현한 선진국형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의 도입이다. 그것을 향한 길을 ‘똥물 속으로 빠져들어 가면서도 까치발로 서서 손으로 끝까지 하늘을 가리킨 것’에 비유한다.그는 “많은 세월이 지난 뒤 또 다른 정신 나간 의사가 이 분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 시스템을 다시 만들어보고자 마음먹는다면 우리의 기록은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 책은 그 기록의 일환”이라고 적었다. 손이 잠기더라도 누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남기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는 책의 첫 페이지에 단 다섯 글자, ‘정경원에게’라고만 썼다. 수년간 이 교수와 고락을 함께해온 후배 의사다. 어깨가 부서지고 시력을 잃어가는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 남기는 흔적’의 첫 장에 새긴 후배의 이름이 아프게 다가온다.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