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신성일 빈소를 찾은 조인성 /사진=한경DB
고 신성일 빈소를 찾은 조인성 /사진=한경DB
영화계의 큰 별 배우 신성일이 향년 81세로 지난 4일 별세했다. 고인의 빈소에는 영화계 동료들과 각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는 유족인 엄앵란과 자녀들이 조문을 받고 있다.

빈소에는 원로배우 최불암, 이순재, 선우용녀, 김수미, 박상원, 문성근, 임하룡, 이동준, 심양홍, 문희, 박정수, 조인성, 이동준, 한지일을 비롯한 배우와 배창호, 정진우, 이창동, 정지영 영화감독, 그리고 나종민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과 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 이용관 부산영화제 이사장, 방송인 임백천과 가수 인순이 등이 다녀갔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이명박 전 대통령, 강창희 전 국회의장과 박찬욱 감독·강제규 감독·강우석 감독·박중훈·송강호·김혜수·송혜교 등의 영화인들이 근조 화환을 보냈다.

조인성은 "생전 한 번 밖에 못 뵀다"면서 "가시는 길 인사드리러 왔다"고 애도했다.

신성일은 최근까지도 유명 사진작가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소확행'(가제)을 준비 중이었다. 신성일이 직접 기획과 주연을 맡고 안성기, 박중훈 등이 합류할 예정이었다.

안성기는 "저에겐 특별한 기억이 있는 분"이라며 "제가 60년대 아역배우로 선배님과 활동했고, 그 모습을 지금까지 봐왔다"면서 "성인이 돼서도 80년대 좋은 영화 한 편을 같이 했다"며 고인과 추억을 되짚었다.

그는 이어 "지난봄부터 내년에 영화 한 편을 같이하기로 약속했고, 시나리오도 거의 완성됐다고 들었다"면서 "오랜만에 (선배님과) 같이 영화를 해서 기뻤는데 허망하게 가시니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수미는 "당신(고인)은 천생 배우셨다"며 "불과 한 달 전 통화했을 때도 '수미씨, 나 괜찮아' 이러시면서 굉장히 자신하셨는데,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배우 하라고 그러셨나 보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신영균은 "배우라는 직업은 행복한 직업이다. 80년을 살다 갔지만, 영화 속에서 하고 싶은 것은 다 했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행복했을 것"이라며 "이제는 천당 가서도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잘 지냈으면 좋겠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故 신성일 빈소 최불암 엄앵란 /사진=사진공동취재단
故 신성일 빈소 최불암 엄앵란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고인은 1960년 신상옥 감독·김승호 주연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이후 '맨발의 청춘'(1964년), '별들의 고향'(1974년), '겨울 여자'(1977년) 등 숱한 히트작을 남기며 독보적인 스타 자리에 올랐다.

신성일은 인기 최절정기 엄앵란과 결혼했다. 신성일은 나중에 외도와 사업실패 등으로 40년 넘게 별거 상태로 지냈지만, 힘든 시기에는 서로 곁을 지키며 기둥이 돼줬다.

전성기는 결혼 이후에도 계속됐다.'떠날 때는 말 없이'(1964), '위험한 청춘'(1966), '불타는 청춘'(1966)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남자 배우로서는 독보적이었기에, 당시 거의 모든 여배우가 신성일의 상대역을 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0∼60년대 신성일 인기는 미국의 제임스 딘, 프랑스의 알랭 들롱과 비견되며 총 500편이 넘는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그가 배우 외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 정치에도 눈을 돌린 신성일은 11대(1981), 15대(1996) 총선에서 거푸 낙선한 끝에 2000년 16대 총선 때 대구 동구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70대에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며 건강에 신경 쓴 그는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 그는 결국 병마와 싸우다 지난 4일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영결식은 6일 오전 10시에 진행하며, 오전 11시 서울추모공원으로 고인을 옮겨 화장한다. 장지는 경북 영천의 선영이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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