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으 故 배우 신성일, 4일 새벽 별세. 향년 81세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으 故 배우 신성일, 4일 새벽 별세. 향년 81세
배우 신성일이 폐암 투병 끝에 4일 타계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측은 이날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이신 영화배우 신성일이 금일 오전 2시 30분께 별세했다"라고 전했다. 향년 81세.

고(故) 신성일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고인은 최근 급격히 건강이 악화돼 전남의 한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전날 상태가 악화돼 가족이 빈소를 예약했다가 사망 전 '별세했다'는 오보가 나오기도 했다.

고 신성일의 마지막 방송은 지난 1일 방송된 '인생다큐 - 마이웨이'다. 이 방송에서는 배우 김수미가 배우 신성일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신성일은 김수미를 포함한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에 등장해 투병 중임에도 정정했던 생전 모습을 보여줬다.
신성일 김수미 출연 모습 (TV 조선)
신성일 김수미 출연 모습 (TV 조선)
김수미는 "신인 시절 영화 촬영 현장에서 감독이 예정에 없던 노출 촬영을 요구했다"며 "당시 막 결혼을 한 신인이었고 신혼여행을 갔다가 추가 촬영을 하기 위해 현장에 오자 감독이 옷을 벗으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때만 해도 감독이 나 같은 신인에겐 함부로 대했다. 내가 못하겠다고 하니 돈은 다 받아먹고 뭐하는 짓이냐고 하더라"라며 "(내가 어쩔 줄 몰라하니) 당시 최고의 스타이자 상대 배우였던 신성일씨가 내 편을 들어줬다. 촬영을 접자고 하고 무마시켜 줬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일이 가장 고마운 일 중의 하나다"라고 전했다.

이 말을 들은 신성일은 "그때 신인 배우들한테는 내가 항상 그랬었다. 문희도 그랬고…"라며 "내가 상대하던 배우들이 다 처녀고 신인이었다. 내가 보호 안 하며 해줄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수미도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신성일은 어쨌든 우리나라 영화계의 큰 별이다. 내가 이야기를 듣기로는 신성일의 폐암 투병 경과가 좋다"며 "아마 한 80세 된 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폐암을 꼭 이겨내셔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성일은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방송이 전파를 탄 뒤 3일만에 유명을 달리 했다.

부인 엄앵란(82)은 그와 1964년 결혼했지만 4년 만에 성격 차로 별거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앵란은 올해 초 한 인터뷰에서 "신성일이 초라하게 죽을 수는 없다"며 "마지막까지 특실에서 지낼 수 있도록 병원비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2007년 부산 수영만요트경기장 야외상영장에서 열린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는 신성일-엄앵란.  [연합뉴스 자료사진]
사진은 2007년 부산 수영만요트경기장 야외상영장에서 열린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는 신성일-엄앵란. [연합뉴스 자료사진]
당시 엄앵란은 "톱스타들이 초라하게 죽었던 옛날 시대에 살았다. (신성일은) 그렇게 죽으면 안 된다"며 인생의 동반자로서 애정을 드러냈다.

딸 강수화 씨는 "어머니는 ‘신성일은 VVIP 특실에서 대우받고 돌아가셔야 한다’고 하셨다. ‘작은 방에 병원비도 없어서 돌아가는 거 못 본다. 왜? 내 남편이니까. 난 그걸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돈 꾸러 다니면서 병원비 대고 자식들한테 손 벌리는 그런 배우는 싫다’면서 ‘우리는 동지야. 끝까지 멋있게 죽어야 한다’고 했다"는 엄앵란의 소신을 전하기도 했다.

신성일은 1960년 '로맨스빠빠'로 데뷔해 1960~1970년대 한국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톱스타의 인기를 누렸다.

영화 '아낌없이 주련다', '맨발의 청춘', '만추', '별들의 고향', '겨울여자' 등 주연 작품만 507편을 기록, 한국영화 중흥기를 견인한 대표적인 연기예술인으로 한국영화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부인 엄앵란과 아들 강석현씨, 딸 강경아, 강수화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6일이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